요즈음 새로이 선출된 민선자치단체장들의 기업유치를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지역의 경제활력을 고취시키기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걸고 뛰는 모습이다.
이를 보면서 필자가 과거 외환위기 직후 1998년에 경험했던 사례가 생각나 소개한다. 당시 필자는 산업자원부 수출과장이었다. 단군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던 IMF사태 당시 수출과장은 우리나라 공무원 중에서 가장 바쁜 자리였다. 바닥난 국가유동성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수출을 늘려 달러를 채워야만 했으니까.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관계기관회의, 무역동향점검, 애로해결 등으로 눈코 뜰새 없었다.
이미 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WTO에 가입한 한국이 무역흑자달성을 위해 수입물량규제, 관세인상, 덤핑수출 등 과거의 수단은 동원할 수 없는 처지였고, 다만 WTO체제하에서 인정된 수출증대 방안으로 수출보험, 수출마케팅지원 등의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출마케팅 지원책의 하나가 바로 展示(전시) 산업의 육성(당시 서울 삼성동의 조그만 COEX가 유일한 무역전시장이었다)이었고 이를 위해 적어도 부지 10만 평에 세계적 규모의 전시장 건립을 구상하고 어렵사리 예산당국을 설득해 1차 사업비로 수억 원을 책정했다. 문제는 어느 곳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큰 부지를 제공할 지자체의 결심과 지리적 위치, 물류 등 기술적인 문제들도 관건이었다
두 군데에 관심을 가졌다. 경기도의 일산과 인천의 송도매립지. 당시 필자로서는 일본 도쿄만의 빅-사이트(Big-Sight)라는 전시관을 둘러보고 온 터라 내심 영종도공항이 가깝고 해상물류까지도 가능하며 상대적으로 일산보다 광활하고 행정적인 절차도 비교적 단순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천송도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속내를 밝힐 수도 없었다.
양측의 접근방법은 너무나 달랐다. 지자체장의 유치노력과 태도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산자부 장관과 재경부 부총리를 거친 경제통의 임창열 지사였다. 인천시는 최기선 시장이었다. 경기지사는 담당공무원들에게 사표까지 언급할 정도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고 이들 공무원들 역시 호흡을 맞추어 다방면의 인적네트워크를 동원하고 또 직접적으로 수없이 나름의 논리와 의지를 피력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인천시는 단체장은 물론 담당자들은 전시컨벤션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도가 많이 떨어졌고 따라서 이해와 설득을 펴는 노력도 많이 부족했다. 물론 전시장부지의 제공조건도 경기도가 훨씬 좋았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을 하던 도중에 과중한 자리에 2년 가까이 근무한 터라 타부서로 발령이 났다. 후임자가 오면서 경기도 일산으로 결정되었다. 그곳이 킨텍스(KINTEX)다. 이후 각 지자체가 크고 작은 전시컨벤션센터를 설립했다.
내 생각으로 다소 열세라고 생각했던 경기도 일산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집권당의 당직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의 산자부 장관과 대학 동창이었던 반면 인천시장은 그러한 연고가 없었던 점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진정 KINTEX 유치의 결정요인은 개인적 연고가 아니라 지자체장을 위시한 공무원들의 판단과 의지, 열정 그리고 상대적으로 유리한 기업유치 조건의 제시 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자체장을 위시한 공무원들의 경제마인드와 장래 예측력, 칸막이를 허무는 유연한 사고, 해외동향을 항상 듣고 보고 공부하는 개방적 태도. 중앙과 지방간의 다양한 네트워크, 신속한 판단과 열정과 의지 등이 기업유치와 역내 기업 살리기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첨언하자면 각 지자체가 너도나도 소위 유행하는 업종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모든 지역이 같은 업종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면 지자체는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성은 떨어진다. 각 지역마다 특정산업과 관련된 인프라와 역사성, 상대적 우위요소 등이 다른걸 감안할 때 이들 요인과 현재의 생산, 고용, 수출에의 기여도와 장래의 발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심업종을 선별적, 순차적으로 육성해 나가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남이 하니까 우리지역도 한다는 식의 유행 따라가기 산업육성은 오히려 장래의 비효율을 낳을 뿐이다.
김창로 대구경북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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