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장하성 펀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추구하는 '장하성 펀드'가 주식시장에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면서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식시장 관계자들이나 일부 학자들은 이 펀드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확산시키고 우리 주식투자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명분만 그럴듯할 뿐 수익만 좇는 외국계 펀드와 다를 바 없다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장하성 펀드란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지난 4월부터 투자금을 모집해 1천200억원으로 출발한 펀드다. 정식 명칭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Korea Corporate Governance Fund). 소액주주운동 등을 통해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 행태를 비판해온 장 교수가 직접 자본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지배구조가 잘못돼 시장에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을 선정, 직접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수익을 거두겠다는 목적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활발한 사회책임펀드(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형태다. 아일랜드에 등록된 역외펀드로 연말까지 2천억 원, 장기적으로 1조 원까지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운용은 미국의 라자드 에셋매니지먼트의 한국 책임자인 존 리 씨가 맡고 장 교수는 투자고문으로 활동한다.

▶펀드 설립과 투자의 방법 논란

장 교수는 장하성 펀드의 투자 목적을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두고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 여기에 직접 개입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주주의 이익을 추구, 기업과 주주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다. 지배구조 개선을 내걸지만 결국은 주가를 끌어올려 자본 이득을 챙기는 게 목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은 펀드의 형태에서부터 시비를 건다. '장 교수의 파트너가 된 라자드는 소버린의 SK 공략 시 자문을 받았으며 미국에선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던 기업 사냥의 베테랑이다.' '장하성 펀드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대부분을 외국인 투자자가 가져가게 되는 상황은 공익성을 강조하는 장하성 펀드의 목표와는 다른 것 아닌가.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에 등록돼 있기 때문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피할 수 있는 먹튀도 가능하다.'(신문 칼럼, 기사)

이에 대해 장 교수는 펀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 투자하고 한국을 떠나면 해체되는 펀드라고 주장한다. 운용회사의 경우 개인적으로 오랜 검증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고, 국내 기관이나 투자자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돼 있으니 외국 자본이 이익을 내는 데 앞장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금 문제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낼 것은 모두 낸다는 입장이다.

▶기존 외국계 펀드와 무엇이 다르나

소버린이나 아이칸 등 외국계 펀드는 최근 국내에서 SK, KT&G 등을 대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뒤 철수했거나 빠져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이 급속도로 몰려 왔지만 국민들 사이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외국자본의 힘을 빌려 괜찮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모양에 대해 우려가 팽배하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끊임없는, 집요한 식욕을 경험한 탓이다. 가깝게는 칼 아이칸 연합이 최고 자산기업인 KT&G에게서 챙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을 목도했다. 아무리 선의를 외쳐도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외국자본에 대한 원초적 불안감과 불신은 치료불능 상태다.'(신문 칼럼)

장하성 펀드가 불신을 사는 근원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검은 머리 외국인'에 불과하다는 비유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장 교수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묘하게 꼬인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념에 눈이 가려져 간단한 회사 지분 구조도 들여다보지 않는 게으름의 결과'라고 반박했다. '경제개혁연대소장을 맡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하성 펀드 등이 목표로 하는 것은 외국자본에 흔들리는 국내 시장에 질서를 잡고 모범적인 기관투자 모델을 세우는 것"이라며 "이 펀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도 외국처럼 다양한 사회책임펀드들이 나올 것"이라며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했다.'(신문 기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장하성 펀드가 맨 앞에 내세우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펀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지배구조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해야 하는가이다. 걸핏하면 지배구조를 들고 나오는 이들은 기업의 모든 문제가 지배구조 탓이고, 심지어는 지배구조가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양 말한다. 그러나 지배구조는 기업사정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고, 또 어떤 것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신문 사설) 개선 방법도 문제 삼는다. '기업지배구조는 경제 시스템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가경제와 기업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유럽에선 기업에 충격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설사 장하성 펀드를 통해 지배구조가 개선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투자환경이 개선되지 못하고 기업경쟁력은 살아나지도 못한 채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 의욕이 더 위축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신문 칼럼)

장하성 펀드에 기대하는 측은 정반대의 논리를 펼친다. '경영의 불투명성과 지배구조의 문제는 한국기업이 국제사회에서 저평가받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이유다. 대주주나 외국인 투자자만 우대하고 소액주주는 여전히 무시하는 기업도 적지 않아 장하성 펀드에 거는 시장의 기대가 크다. 장하성 펀드는 지배구조를 성공적으로 개선해 회사는 물론 대주주, 소액주주, 국가 모두에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신문 사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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