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시민사회의 뻐꾸기들

우리나라는 지금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심각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시민사회의 적조현상에서 비롯된 국가 정체성 문제, 노사, 양극화, 집단 이기주의,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의 갈등이 그것이다. 정부와 국민과 시민사회는 이 갈등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잘못하면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모두 절망의 진구렁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은 민생정치의 실천이다. 국민이 풍요하고, 자유로우며, 기본권이 보장되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의 욕구를 충분히 수렴하고, 정책집행 과정에서도 무조건 밀어부치기보다 민의를 겸손하게 보살피는 애민정신을 가져야 한다.

국민이 해야 할 일은 나라의 법과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나라가 아무리 자유민주적인 제도를 마련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준법의식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나라에 혼란만 초래하고, 국민 스스로를 헤치게 된다. 따라서 국민은 자유와 권리에 선행하는 조건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자유민주주의 문화를 수호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정부와 국민의 소통을 매개하여, 국민들의 생존권과 참정권을 보호, 증진하는 자발적 비정부조직 집단의 바다이다. 따라서 이들 시민단체의 구성과 활동의 조건이 되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시민사회는 원래 유럽에서 산업자본 세력이 부상하면서, 절대왕정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자율적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반작용으로 정부가 권한을 강화함에 따라, 상호작용의 한 주체로서 역할을 상실했다가, 20세기말에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함께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사회는 좀 다르다. 우리나라에 시민운동의 깃발을 든 것은 시민사회의 일원인 대학생들이었다. 비민주적인 기성정치권을 뒤엎은 4.19 혁명이 대표적인 예다. 이후 경제개발이 되면서 그들은 노동자와 시민들과 함께 79년 부마항쟁, 80년 광주항쟁, 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다. 그 후 시민운동은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위로부터의 변화가 그 중심축이다. 지식인, 정치인, 대학생, 노동자 중의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시민운동은 실용적이라기보다 이념적이다. 그래서 일부 주체들의 편향적, 독선적 이념이나 노선분열이 시민사회에 적조현상을 빚게하는 나쁜 단면을 노정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개인에겐 자유와 권리를 부여하면서, 책임과 의무도 함께 부여한데 있다.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가 자율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서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이 이뤄진다.

자유민주주의의 확실한 실천은 시장경제다. 시장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유에 있다. 원하는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사용자와의 교섭에 의해 노동조건을 협정하는 권리가 인정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다. 그러나 절대로 존중되어야 할 최상의 가치는 윤리와 도덕이다.

노동운동 역시 실사구시의 눈으로 세계의 흐름과 국가의 장래를 보아야 할 때이다. 도덕적, 이념적 열정으로, 타협의 실리보다 규탄과 비판 위주의 강경 투쟁을 한 것이, 일부의 무능과 위선을 호도하기 위해 전체의 이익을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반드시 성찰하여야 한다. 노동운동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신용불량 선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자 역시 이제는 명과 실이 상부한 생명력 있는 교육운동을 말해야 한다. 교육은 최고의 도덕정책이자 최고의 경제정책이다. 인재양성만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상적 평등을 앞세워 불가피한 경쟁의 원리를 제한하는 것은 불평등과 다름없다. 따라서 일부 교육단체는 국민이 간절히 추구하는 참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천했는지 자기를 점검해야 한다. 오만과 편견은 파멸을 부른다.

여름철새 뻐꾸기는 제 둥지가 없다. 그래서 알 색깔이 비슷한 텃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 부화한 새끼는 둥지의 텃새 알을 모조리 밖으로 밀어버리고, 텃새의 먹이를 독차지 한다. 소수이지만 영향력이 큰 인간 뻐꾸기들이 아직도 시민사회 곳곳에 음모와 배반의 알을 몰래 낳고 있다.

이수성 前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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