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거 개선이 아니라 개악"…골목마다 주차난 심각

지난 달 말 집앞을 나서던 김병익(55·대구 서구 원대동)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일 쿵쾅거리는 소리에 집짓는 공사가 한창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또 원룸이겠냐 싶었다는 것.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김 씨 집 옆엔 13가구 규모의 원룸이 들어섰다. 하지만 주차공간은 고작 6대.

"우리 동네는 법으로 '주거환경 개선지구'라는데, 주차공간이 있는 집이 들어와야 할 것 아닙니까? 주차장 없는 원룸만 다닥다닥 들어서니 온 동네가 날마다 주차 전쟁입니다. 주거환경이 개선된 지구가 이런 것이란 말입니까?"

'주거환경 개선지구'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주거환경 개선지구 관련 법률이 20년 가까이 된 것인데다 지나치게 규제완화에 치중하다 보니 주차시설 구비에 대한 강제규정이 전무, 다가구주택이 들어찬 골목마다 심각한 주차난을 부르고 불똥은 이웃 주택가로까지 번져 연쇄적인 주차 전쟁을 불러오고 있는 것. 게다가 대로변과 달라 단속도 쉽잖다.

현재의 주차시설 규정에 따르면 원룸 등 다가구주택의 경우, 가구당 전용 면적이 18평 미만일 때 가구당 1대씩 주차공간을 마련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주거환경개선지구일 경우 예외에 속한다. 주차시설이 없더라도 건축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

오래된 건물들을 정비, 주민들의 주거편의를 높인다는 취지에서 각종 규제를 푼 결과, 이런 황당한 현상이 발생했다. 이 법은 본격적인 승용차 증가세가 나타나기 훨씬 전인 지난 1989년 만들어져 주차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대구 서구 원대동에 사는 한 주민은 "가뜩이나 주차난이 심각한 형편에 주차장 없는 원룸이 자꾸만 들어온다."면서 "매일 이웃과 시비를 벌이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원룸이 3, 4개 동 몰린 곳은 이중주차까지 하고 있다. 접촉사고에다 대형 화재 발생시 소방차 진입이 안돼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하지만 행정당국은 관련법의 규정만 따질 뿐 별다른 대책마련을 않고 방관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대구 서구청은 최근 "법에는 없지만 1가구당 0.5대꼴이라도 주차장을 갖춰달라."며 건축업자에게 하소연, 그나마 몇 면의 주차 공간이 갖춰지고 있는 실정이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박용진 교수는 "차고지 증명제(차를 사기 전 주차공간을 마련하는 제도)가 없는 국내에선 원룸같은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일정부지를 공동주차장으로 내놓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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