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때였다. 배를 타고 낙동강 하구(을숙도 하류)의 모래섬 '도요등'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모래를 아그작 아그작 밟으며 철새를 관찰하면 얼마나 낭만이 있겠는가.
그 감상도 잠시였다. 부산지역 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 박중록(부산 대명여고 교사)운영위원장 뒤를 따라 가다보니 금새 지쳤다. 태양은 작렬하는데 그늘 한점 없고,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듯 했다. 멀리서 보면 자그마한 섬인데 막상 걸어보니 왜 그렇게 긴지... 왕복 11km를 그렇게 후들대며 걸어갔다.
▲솔개의 울음소리=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맨채 새를 보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박 위원장의 열정이 부러웠다. '에라! 모르겠다.'며 모래바닥에 앉아있는데 '삐요르~~' '삐요르~~' 맑은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날렵하게 하늘을 가로 지르는 검은 빛깔의 새가 무척 멋져 보였다. 박 위원장이 다가와 "부산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어디에서도 잘 볼 수 없는 솔개죠"라고 설명했다.
솔개가 천연기념물과 보호대상종으로 지정받게 된 사연도 기구하다. 60년대만 해도 마을 뒷산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70년대 정부에서 쥐잡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쥐약을 먹고 멸종하다시피 했다. 독도, 목포 앞바다 등 바닷가에만 소수의 솔개가 살아남았다. 박 위원장은 "이곳의 솔개는 바다 생물을 사냥하기 때문에 쥐약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추정된다"고 했다.
솔개의 비행을 한참 보고 있으려니 우리 일행의 마음도 솔개에 실려 하늘로 나는 것 같았다. 다시 기운이 났다. 새 한마리를 그렇게 넋놓게 바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왜 새를 지켜주고 아껴줘야 하는지를 어느정도 알 듯 했다.
▲아름다운 새들=낙동강 하구에서 일년중 여름철에는 만날 수 있는 새가 가장 적다. 그래도 우리 머리 위를 휙휙 날아가는 새만 해도 수십종이 넘는다. 겨울철에는 70여종, 5만~7만 마리가 관찰될 정도니 그 장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8월 중순이 지나면 월동지로 향하는 물떼새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만 여름 새의 대표격은 개개비와 쇠제비갈매비 등이다.
개개비는 낙동강하구의 갈대밭 곳곳에서 새끼를 기르며 '개객~비비~'하며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쇠제비갈매기는 여름철 물위를 낮게 떠다니다 먹이를 발견하면 물속으로 뛰어든다.
백로와 왜가리는 이곳의 터줏대감이다. 수백 마리 백로가 떼를 지어 잠자리를 찾아 날아드는 모습도 여름철 장관 중 하나다. 바닷가에서 모래에 숨어있는 게 사냥을 위해 바쁘게 쫓아다니는 세가락도요새의 앙증맞은 모습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박 위원장은 새를 바라보면서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쉰다. "명지대교나 아파트단지 건설 같은 각종 개발사업 때문에 내년이면 새가 얼마나 줄어들지..." 그런 말을 듣고나니 '삐요르르르르~~'하는 새소리가 웬지 구슬프게 들린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학술조사팀=영남자연생태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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