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예가 수중(守中) 이종훈씨와 청림원

극소수의 작가들을 뺀 대다수의 전업 문화예술인들은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전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과 문화 분야의 지향점이라면 후자는 먹고 살기위한 수단입니다.

한학자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붓을 잡은 서예가 수중(守中) 이종훈(45) 씨. 은은한 묵향에 묻혀 안빈낙도만을 고집하기엔 현실은 여전히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답니다. 어떨 땐 더 잘 써보려는 욕심이 필력을 흐트러지게도 한답니다.

언젠가 욕심의 껍질을 벗어내다 보면 결국 무심에 다다르고, 비로소 서예도 완숙의 경지에 이르겠지요. 이 씨가 상호를 쓴 인연으로 가끔 찾는다는 '청림원(淸林園)'에서 서예와 전업 작가의 삶을 들어봤습니다.

"글씨의 맛과 멋을 추구하는 서예도 생(生)과 숙(熟)의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좋은 문장이나 글감을 보다가 도도한 흥취가 일면 이를 한지에 옮겨 쓰려다가도 너무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글씨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서예가에게 필력은 오랫동안 연습한 운필(붓놀림)과 더불어 부드러운 붓이 종이를 긁는 마찰력과 획 긋는 속도, 스며드는 먹의 양 등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때 힘이 넘친다. 이 중 하나라도 어깃장을 놓으면 작품은 허사가 되기 일쑤이다.

서예에 본격 입문한 지 25년째가 되는 이 씨가 즐겨 쓰는 글씨는 행'초서. 전서, 예서, 해서 등의 서법을 익히고 나서 마지막 단계에 쓸 수 있는 이 서법은 웬만큼 한자를 익혀도 판독이 힘든 글씨체이다.

"행'초서는 한문과 글씨에 대한 안목이 없으면 쓰기 힘든 서법입니다. 물론 각 서법마다 고유의 멋과 맛이 있고 특징을 갖기도 하지만…."

어려서 고향 봉화에서 조부에게 소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한 것이 행'초서를 즐겨 쓸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상형문자가 모태인 현재의 한자를 서법별로 그 멋을 말한다면 가장 회화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서법이 전서(篆書)라고 할 수 있다. 길쭉하던 전서체가 획이 보다 직선화되면서 정방형의 간략형으로 바뀐 것이 예서(隸書), 반듯한 서법인 해서(楷書), 그리고 행운유수, 즉 구름 가듯 물 흐르듯 쓰는 글씨가 행'초서(行'草書)이다. 해서가 단정한 맛이라면 행'초서는 자연스런 맛에 비유될 수 있다.

"선호하는 서법이 굳이 식성과 연관성은 없지만 제가 면류와 찜류를 특히 잘 먹죠."

그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손칼국수를 가장 즐긴다. 특별난 재료를 넣는 것도 아니지만 고향의 맑은 공기와 물, 손맛이 녹아 든 자연스런 맛이 그렇게 좋더라는 것. 군 제대 후 늦게 배운 술 실력도 늘어 요즘 소주 2, 3병을 거뜬하게 비운다. 취미는 배드민턴과 탁구. 한 때 정적인 작품 활동으로 인해 허리에 무리가 생기자 시작한 것이 올해로 10년째다.

"어찌 보면 서예도 요즘 관심이 높은 웰빙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거예요."

붓을 잡아 글씨를 쓰려면 우선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집중은 다름 아닌 마음을 붓끝에 모으는 것. 이 후 한 획 한 획 글씨를 긋다보면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는가에 의식이 모이고 이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호흡이 조절되고 시간의 흐름도 잊을 수 있다고 한다.

바쁘고 심한 스트레스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한 정적인 활동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서예 대중론이다. 그래서 서실(053-753-5849)도 열었다.

"무엇이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보면 자연히 다른 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상형성과 역동성이 결합된 서체가 등장하면 더 나은 예술의 한 장르를 꽃피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이 씨는 나중에 고향에 둥지를 틀고 지우들과 글씨, 문인화, 한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

◇청림원

수중 이종훈 씨와 들른 청림원은 숯불갈비와 한정식 전문점으로 뒤편에 공원이 있어 녹음이 우거진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8개월 전 문을 연 이 집은 경주 산내에서 소고기의 특수 부위를 들여오고 갈비와 육회용으로 대구 축협의 브랜드인 팔공상강우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부드러운 육질을 자랑하는 안창살과 생갈비를 비롯해 상호를 딴 정식메뉴가 추천할 만하다.

직접 솥에서 눌러 만드는 누룽지로 만든 누룽지탕은 음주 후 속풀이용으로 인기가 높은 편.

인테리어가 잘 꾸며진 방에서는 저녁 무렵 지인들과 소주 한잔 마시기에 적당하다. 대구 수성구 범어 4동 KBS 골목 50m지점에 위치해있다.

문의:053)742-9700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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