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 베어벡 한국대표팀 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과 딕 아드보카트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재직하면서 호감을 얻은 지도자였다. 부드러우면서 신중한 언행을 지녔고 선수들을 세심하게 조련하며 상대 파악에 능한 그는 히딩크의 '큰 성공'과 아드보카트의 '절반의 성공'을 도왔다. 유능한 참모였던 그는 2006독일월드컵 이후 갈망해왔던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조언자로서 그림자같은 행보를 보이던 베어벡 코치는 감독이 되면서 언론에 전면적으로 노출됐다. 그는 여전히 침착하고 자신감있게 말하며 호감을 주는 신사이지만 아시안컵대회 예선 대만과의 원정경기, 이란과의 홈 경기를 치르며 썩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경기 내용이 단조롭다든지,전술 운용이 소극적이라는 등의 평가가 그것이다. 사실 베어벡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선정될 당시 코치로서는 유능할 지 모르지만 감독 경력이 일천하다는 점을 들어 능력에 회의를 나타내는 평가를 일부 언론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을 제외하고 최근 잇따라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세 명의 네덜란드인 감독들에 대한 국내 언론의 태도는 재미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재직 당시 언론의 거센 비판을 받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나아갔다. 그가 한때 체코와 프랑스에 0대5로 져 '오대영 감독'으로 불린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언론의 비판을 거의 받지 않은 것은 물론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고 그 자신이 '한국에서 왕처럼 대접받으며 지냈다'고 그리워할 정도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이는 그가 준비 과정에서 비교적 좋은 경기 내용을 보인 점도 있지만 나중에 월드컵 4강의 성과를 거둔 히딩크를 비판하다 머쓱하게 된 국내 언론이 아드보카트가 히딩크처럼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에 비판의 칼날을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에 좀 무르게 대했다고 반성(?)한 국내 언론은 베어벡 감독에게 다시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6일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 홈 경기에서 8대0으로 대승해 잠시 비판이 줄어들었지만 앞으로 경기 결과에 따라 베어벡 감독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언제든 높아질 수 있다.
카리스마가 강한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감독과 달리 베어벡 감독은 선수들과 좀 더 친숙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의 지도자이다. 그런 그는 이란전에서 1대1의 결과가 나오자 선수들이 자신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게 먹혀든 탓인지 6일 대만전에서 한국 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공격과 악착같은 수비로 대승을 이끌어내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베어벡 감독은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한데 이날 경기에서 선수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의 상대였던 프랑스 언론은 대표팀 감독을 뒤흔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레이몽 도메네크 감독은 월드컵 준우승의 성과를 이끌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소심하고 유약하다',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휘둘린다'는 등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도메네크 감독보다 더한 비난을 들으며 대표팀을 이끌어야 했던 에메 자케 전 감독은 98 월드컵 우승을 일군 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 언론의 관심 영역에서 사라졌다. 프랑스 언론은 비판을 퍼부었던 감독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머쓱해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만큼 비판의 채찍을 가했기에 그만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는 것이 프랑스 언론의 입장이다.
축구대표팀 감독은 성공하면 '리더십'이 조명받을 정도로 아주 멋진 직업이지만 실패의 책임에 대한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다. 비판의 파도가 언제든 거세질 수 있는 '시름의 바다'에서 막 돛을 올린 '베어벡 호'가 항해를 끝낼 때 고독한 선장은 웃게 될까?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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