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IMF 빚' 소액소송 봇물…예년에 3배 육박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당한지 10년을 앞두고 'IMF 빚'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외환위기때 많은 서민들이 상호신용금고(현 저축은행)나 파이낸스 등 제2금융권에 높은 이자를 주고 소액을 빌려 쓴 뒤 이를 갚지 못한채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채권 업체들이 소멸시효(10년)를 앞두고 채권확보를 위해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 올들어 법원에서 접수·처리되는 소액사건이 예년의 3배에 육박하고 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강도의 빚잔치를 해야하는 '제2의 IMF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김모(71·포항 오천읍) 씨는 "아들(44)이 사업하다 IMF때 망하고 주민등록만 내밑에 옮겨놓고는 수년째 연락도 닿지 않는데 은행에서 빚갚으라는 독촉장이 오더니 얼마전에는 소송하겠다는 최고장이 배달됐다."며 "주변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웃이 여럿이다."고 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처리한 소액사건(2천만 원 이하)은 모두 2만여 건으로 지난 해 9천800여 건보다 2배나 많다. 법원측은 이런 추세라면 올연말까지 3만건이 넘게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소송 폭증은 'IMF 10년'이 되는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김찬돈 지원장은 "금융기관들이 IMF사태를 전후해 발생한 악성채권을 쌓아두고 있다가 소멸시효를 넘기기 전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채무자를 추적, 채권을 회수하거나 채권보전을 위한 시간벌기 차원에서 줄소송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채권 금융기관이나 추심업체들이 소액소송을 서두른다는 소문이 퍼지자 금융기관에는 소액사건의 기준이 되는 2천만 원만 갚으면 되는지, 아니면 그동안의 원리금을 합친 금액을 모두 다 갚아야 하는지 등을 묻는 채무자들의 전화도 잇따르고 있다.

모은행 지점장은 "은행의 경우 2002년을 전후해 이른바 'IMF 악성 소액채권'은 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거나 아예 떨어내는 등의 방법으로 대부분 정리했지만 채권을 그대로 둔 제2금융권이나 사금융업체들은 소멸시효 만기를 맞아 소송 폭증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포항 한 면사무소 공무원은 "농어촌 지역에 조부모와 손자들만 사는 세대 대부분이 'IMF 결손가정'인데 소송을 당해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까지 내주고 거리로 나 앉을 사람들이 수두록 하다는 말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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