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에 몰린 시골 초등학교를 출향한 동창생들이 구했다.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영북초교 화남분교. 여느 초교 처럼 화남분교도 젊은이 이농으로 학생 수가 매년 줄어 활기를 잃었다. 올 초 전교생 수는 9명으로 폐교 검토 대상이 됐다. 이미 지난 7월 폐교를 위한 1차 서류가 교육청으로 올라갔다. 학부모나 동창생들에게는 추억이 배어있는 모교가 없어지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주방용품 제조업을 하는 조태호(56) 씨가 올 초 총동창회장이 된 뒤 화남분교 선생님, 동창들과 함께 학교 구하기에 나섰다. 화남분교가 학생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좋은 영천 시내로 전학을 가버려 폐교 위기에 몰렸다는 점에 착안, 면학 여건을 개선해 전학간 학생들을 U-턴시키면 폐교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동창들이 백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학부모 설득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면학 여건 개선을 위한 재원 마련이 문제였다.
이 때 전 세계 4만여 명의 굶는 어린이에게 한끼 식사를 제공해 '국수왕'으로 불리는 성호정 송학식품 회장이 이 사실을 알고 행동에 나섰다. 학교를 수리하고 과외 선생님을 채용하는 비용을 대기로 하고 우선 1억1천만 원을 내놨다. 동창들도 모금에 나섰다.
동창들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여름 방학 기간 내내 화남분교에는 공사가 이어졌다. 학생들을 통학시킬 스쿨 버스도 한 대 샀다. 영어 미술 음악 컴퓨터를 가르칠 과외 교사 4명도 동창들이 모셨다. 선생님들도 방과후 학습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
조 회장은 동창과 학부모들에게 "동네사람들이 쉬던 정자나무가 사라호 태풍 때 넘어져 아쉽지 않았느냐?"며 "있을 땐 모르지만 없어지고 나면 모교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화남분교에 활기가 돌고 동창들의 노력이 이어 지자 영천 시내로 자녀를 유학보냈던 학부모들이 하나둘 U-턴 운동에 동참해 학생이 19명으로 늘었고, 또다른 학생들도 잇따라 U-턴할 의향을 비쳤다.
동창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화남분교는 특성화학교로 거듭나며 영천교육청으로부터 학교존속이 결정났다. 그러나 정작 본교인 영북초교는 인구가 감소해 올해를 마지막으로 인근 초등학교와 통폐합이 결정나 본교와 분교의 운명이 뒤바뀐 상태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자녀를 지난 8월 화남분교로 전학시킨 황진용씨는 "좀 더 큰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면 나을 것 같아 외지 학교에 보냈는데 최근 동창회의 간곡한 권유와 외국어, 피아노, 컴퓨터 등 특성화 교육을 지향한다는 학교측의 말을 듣고 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전 화남분교 박선섭 교장(현 임고초 교장)은 "동창회와 지역민의 관심으로 '폐교 1순위의 학교'에서 '첨단 특성화학교'로 바뀌자 전입갔던 학생들이 속속 환교하고 있으며, 재전입을 문의하는 학부모들도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2회 졸업생인 성호정 회장은 "화남분교는 학생 20여 명에 선생님 7명인 학교가 됐다."며 "특성화 교육, 인성교육, 독서교육 등으로 전국 최고의 시골 초교가 되도록 동창들과 함께 힘 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했다.
5회 졸업생인 조태호 회장은 "일단 폐교는 막았으나 앞으로 들어가야 할 비용이 만만찮다."며 "성 회장을 제외한 동창들을 상대로 4억 원을 모을 계획인데 쉽지는 않다."고 했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영천·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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