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 서울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벌어진 사건 하나가 여간 민망스럽지 않다.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고령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사건은 앞으로의 세태가 어떻게 바뀔지 가늠조차 못하게 만든다. 사건의 단초는 스물아홉 살의 한 남자 대학원생이 빈 일반석을 놔두고 하필이면 노약자석에 가 앉은 데서 비롯됐다. 공부에 지친 머리를 푸느라 그랬는지 MP3 플레이어로 음악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가 보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예순여섯 된 할아버지가 비키라고 했다. 한데 젊은이는 노인의 말을 무시한 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울화통이 터진 노인은 젊은이를 밀치고 이어폰 줄을 빼 버렸다. 화가 난 대학원생은 노인을 발로 걷어찼고 전동차 안은 순식간에 祖孫(조손)뻘 나이의 두 사람이 벌이는 격투장으로 변했다. 결국 경찰서에 끌려갔고 젊은이의 사과를 노인이 받아들임으로써 사건이 일단락되기는 했다.
○…살다 보면 분통 터질 만한 일도 많고 해괴망측한 일도 적지 않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일은 벌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이번 지하철 사건은 방죽의 틈새로 새는 물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듯 아직은 그래도 견고한 듯 보이는, 우리네 유전인자에 새겨지다시피한 禮(예) 관념도 머지않아 사그라질 것 같은 우려감을 갖게 만든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노인국이 될 전망이다. 출산율 1.08이 가리키듯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반면 평균 수명은 남 74.2세, 여 81.5세로 선진국 평균 수명보다도 높다. 젊은이 한 명이 노인 여러 명을 부양해야 할 시대가 머지않다. 靑(청)-老(노)의 세대간 갈등이 커질 개연성은 충분하다.
○…古今(고금)과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변함없이 가치를 발하는 美德(미덕)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敬老(경로)' 관념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톨레랑스(tolerance:관용)' 못지 않게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의 '경로'는 수평적인 '관용'과 달리 수직적인 관념이다. 젊은이는 미래의 자신인 노인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알고, 노인 역시 실수 많고 덤벙대던 젊은 날을 떠올려 본다면 이번처럼 치고받는 사태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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