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명 강행한들 헌재 수장 권위 서겠나

열린우리당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오는 14일 강행 처리할 태세다. 지난주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 3당이 본회의 불참으로 무산시킨 동의안을 국회의장 직권으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또 한번 政局(정국)이 요동치고 순탄한 정기국회는 물건너갈 것 같은 분위기다. 직권상정에 맞서는 한나라당이 전 후보자에 대해 직무 정지 가처분 소송까지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 후보자에 대한 지명 절차의 欠缺(흠결)과 후보자 본인의 자질 시비로 촉발한 사태가 정쟁으로 비화한 것은 야당의 정치공세로만 볼 수 없다. 이미 지적했듯이 대통령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다. 헌법소장은 엄연히 재판관 중에 임명하도록 한 조항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임기 6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멀쩡하게 재직 중인 재판관을 중도 사퇴하도록 한 편법이 禍(화)를 부른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사전에 대법원과 憲裁(헌재)에 자문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헌법 규정을 어긴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여당이 뒤늦게 이번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헌재 소장과 재판관 인사청문회를 동시 실시하도록 관련법을 고치겠다고 한 것은 잘못을 인정한 것 아닌가. 그래놓고 직권상정을 강행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 짓이다. 무엇보다 전 후보자 스스로가 헌법 최고기관 首長(수장)은 더 엄격한 규정 해석과 절차가 필요한 자리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전화를 걸었다고 덜렁 사퇴하고 청문회 과정에서 걸핏하면 '임명권자의 뜻' 운운하는 자세 역시 헌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 낼 인물인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 후보자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 고민은 헌재가 국민적 신뢰를 받도록 하는 길에 대한 물음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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