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글쓰기와 글치기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송찬호 시인의 시 의 끝 부분입니다. 지금은 잊혀진 체 책상 서랍에서 혼자 뒹구는 만년필, 이 필기구를 바라보는 시인의 상념에서 진지하지 못한 삶에 대한 뉘우침 또는 안타까움의 정서가 묻어납니다.

우리네 삶의 기제가 아날로그식에서 디지털식으로 변해가면서 글을 생산하는 방식도 '글쓰기'에서 '글치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이가 아니라 화면에다, 필기구 끝에 전달되는 근육의 힘이 아니라 컴퓨터 자판과 손가락 끝 마디의 가벼운 접촉으로 글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톡,톡,톡,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만들어가는 '글치기'는 우선 그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손가락이 자판에 닿는 순간 머릿속 생각들이 인쇄체의 단정한 글자로 화면에 나열됩니다. 컴퓨터에 내장된 각종 편집 기능까지 제대로 활용한다면, '글쓰기'에서 겪는 불편 사항은 깨끗이 해결됩니다. 이처럼 '글치기'가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있어서 매우 빠르고 편리하지만, 그 작업이 너무 가벼워지고 있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습니다. 송찬호 시인이 안타깝게 회상하는 것도,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히며, 그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 치열성의 사라짐이요, 백지의 벽에 새겨진 글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는 푸른 악어의 낭자한 울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만의 생각의 골짜기에 푸른 악어를 키우기보다는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세상의 개미떼처럼 많은 관련 정보들을 너무나 손쉽게 옮겨와 그럴듯하게 편집한 글들이 난무하는 것은, 분명 '글치기'의 역기능입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보면, 자신의 생각은 손톱만큼도 보태지 않고 남이 쓴 글을 마구 퍼와 적당히 조립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속이 울렁거리고 가슴이 답답하여 순국할 지경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탄식이 생각납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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