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 프리즘)모로 가는 서울

9월 모의평가를 친 그 다음날 단정한 옷차림의 어떤 남학생이 찾아왔다. 아무리 공부해도 언어영역 성적이 오르지 않아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학습 습관, 시험을 칠 때의 풀이방법과 심리적 상태 등에 관해 질문을 했다.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문보다는 질문과 보기를 먼저 보는 역순의 문제풀이 습관 때문에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였다. 많은 학생들이 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라는 풀이 순서를 지키지 않는가.

상당수의 선생님들은 문제풀이를 할 때 설명의 편의를 위해 질문과 보기를 먼저 보게 한 후 지문을 해설하는 경우가 많다. 보기에 맞추어 지문을 해설하는 역순의 설명은 얼핏 보면 매우 명료하고 시간을 단축하는 해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전 상황에서는 그런 식으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질문과 보기를 먼저 보고 지문을 읽게 되면, 머리에 입력된 다섯 개의 보기가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작용하여 지문의 올바른 이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답에 짜 맞추는 설명은 수업을 들을 때는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실력 향상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아무리 문제를 많이 풀고 오래 학원에 다녀도 성적이 안 오른다면 자신의 학습 방법과 선생님의 수업 방식을 한 번쯤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국어 선생님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한 후 실력이 비슷한 학생 열 명을 상대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다섯 명은 질문과 보기를 먼저 본 다음 지문을 읽고 답을 찾게 했다. 나머지 다섯 명은 지문부터 읽고 문제를 풀게 했다. 네 차례 시험을 치면서 각 집단은 풀이 방법을 두 번씩 서로 바꾸었다. 결과는 지문부터 읽은 집단의 평균 성적이 매번 더 좋았다. 특히 논리적인 사고력보다 작품의 감상력을 중시하는 문학 문제는 더욱 그랬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도 지문부터 읽는 것이 글의 주제를 훨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학 전에 성행하는 지나친 문자 교육, 초등학생에게 작품 감상보다는 딱딱한 논리를 먼저 가르치는 논술지도, 지금 배우고 있는 교과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고 다지기보다는 그 다음 단계를 미리 공부하는 선행학습 열풍 등과 같이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 모든 파행은 남보다 한 발 앞서 가겠다는 조급증이 낳은 결과이다. 또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요령과 편법을 즐기는 사람은 정도(正道)로 가는 사람보다 중간지점까지는 앞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종 종착지에는 반드시 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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