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재목 作 '내 기억 속의 작은 연필'

내 기억 속의 작은 연필

최재목

나는, 내가 만지작거리던

작은 연필을 기억한다

깎아 놓으면 작아지고 작아지면서 자꾸 줄어들던

이제 그런 애닯던 이유들이

볼펜 속에는 없다

손 주변으로 나무 파편 쌓이고

끝이 뾰족한 연필이 밤새 데려와 놀던

노트 네모난 칸 속의 푸른 달빛을 기억한다

달빛 속에 기억된 흑연, 그 까마득한 하늘과

더불어 숨쉬던 꾸부렁 글씨 몇 자,

초목성(草木性)으로 잠들던 손끝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떨어지는

연필의 작고 아름다운 실망을

손바닥에 주워 올려 꼭꼭 쥐곤 하던

그런 쓰잘 데 없는 매만짐이

내게는 지금 어떤 명분으로 살아남아 있을까

푸른 기억 속의 작은 연필 하나로

옛 것 중, 연필을 떠올린다. 그 '연필'은 우리의 유년과 같이 한다. 연필은 '깎아 놓으면 작아지고 작아지면서 자꾸 줄어'든다. 아끼면 아낄수록 줄어드는 '연필'이 우리를 애달프게 했던 것이다. 또 연필을 깎을 때 '손 주변으로 나무 파편 쌓이'고 뾰족하게 드러내던 '흑연'의 상큼한 향기와 검은 빛깔, 그 '草木性(초목성)'이 얼마나 어린 가슴을 설레게 했던가. 손끝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잠깐의 실수로 떨어질 때 그 아찔함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놀라게 한다.

'연필'의 사라짐에 대한 애달픔은 순수한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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