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수능시험 성적결과 공개

연구목적을 위해서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의 성적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교육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수능 원자료를 입수하면 수험생들의 출신 고교·지역간 학력 격차, 평준화 및 비평준화 지역간 학력 격차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은 고교 평준화에 대한 시각과 맞물려 명확하게 양측으로 갈라진다. 이번 판결이 고교를 서열화하고 입시 중심의 획일화된 교육을 조장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은 평준화 지지론의 입장이다. 반면 엄연한 학력 격차를 진단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 반대 입장에 있다.

▶판결의 내용과 의미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일 조전혁 인천대 교수 등이 '2002~2005학년도 수능 원자료와 2002, 2003년도 학업수준 평가 분석자료를 공개하라.'며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수능 원자료는 비공개 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이는 그동안 일부 연구자와 국회의원이 수능 원자료를 평준화 반대의 목적으로 활용한다며 정보 공개를 거부해온 교육부의 조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다. 재판부는 수능 원자료를 공개해도 시험 시행을 위한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험의 공정성을 해치거나 평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단, 정보공개 요구 목적과 다르게 외부에 유출될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으므로 정보제공 방법을 제한하거나 유출시 손해배상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학업수준 평가 자료는 학교간, 지역간 학력 격차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판결을 내렸다.

일단 교육부가 수능 원자료 공개가 불러올 부작용을 우려해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번 판결의 파장이 곧바로 현실화될 여지는 없다. 이번 1심 판결이 나오는 데만 1년2개월이 걸렸으니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갈 경우 일러도 내년 하반기에나 확정 판결이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반대-평준화의 뿌리가 흔들린다

수능 성적 공개에 따른 부작용은 쉽게 예상된다. '학교 및 지역 사이 수능 점수 차가 드러나고, 학부모들은 점수가 더 높은 지역이나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자 애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장전입 등 갖가지 편법이 동원되고 실제 주거 이전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점수가 낮은 학교에 대한 불신은 커져, 학교 교육은 외면당하고 사교육이 강화될 것이다. 대학 입학전형에서 내신 비중을 늘리도록 해 학교 교육을 살리려던 정부 정책은 벽에 부닥치고, 고교 등급제의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다.'(신문 사설)

이번 판결로 고교 평준화 제도의 존립 근거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전망은 1972년 평준화가 시행된 이후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대학입시를 위한 평가 형태가 예비고사와 본고사-학력고사-수능시험으로 바뀌었어도 성적 원자료는 공개된 적이 없다. 평준화뿐만 아니라 대입 제도 자체가 전국 고교간 학력이 고르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해왔기 때문이다.

'수능성적 원자료가 공개되면 고교별·지역별로 씨줄 날줄의 분석이 이뤄지면서 전국의 고교가 1등에서 꼴찌까지 서열화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학교현장에서 학력신장이란 이름으로 입시위주 교육을 더욱 심하게 하지 않겠는가. 또 1등 학교와 꼴찌 학교가 공식화된 마당에 추첨에 의해 학교배정이 이뤄지는 평준화는 온전할 수 있겠는가.'(신문 사설)

전교조는 논평을 통해 '고교 서열화나 등급화는 곧바로 중학교까지 고교 진학 경쟁을 유발하고 입시강요 교육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른바 완전한 고교 평준화 해체가 현실화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찬성-보완책을 통해 상향평준화 가능

이번 판결을 반기는 쪽에서는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간, 지역간 학력 격차를 숨겨 평준화로 인해 깊어진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능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 간의 학력차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수능 점수 등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는 동안 도시와 농촌, 강남과 강북 학교 간의 교육 격차가 나날이 심화돼 가고 있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학교라는 환자를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고, 치료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해 날이 갈수록 그 병이 깊어져 가고 있는 셈이다.'(신문 칼럼)

사회적 부작용 등을 이유로 항소할 뜻을 밝힌 교육부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진다. '수능 성적이 공개되면 평준화 교육의 틀이 무너질 것이라는 교육부의 반응이야말로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신문 사설) '학부모들이 학교 격차를 사실대로 알아야 학교에 더 잘 해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고, 교사들도 자신들의 교육능력 성취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자극받아 열심히 가르치게 된다. 그래야 교육당국도 뒤떨어진 지역과 학교를 과학적으로 파악해 고르게 끌어올리는 정책을 펼 수 있다. 교육부가 오히려 엄연한 격차를 속이기 위해 자료 공개를 막아온 것이 학교 서열을 더 굳히고 교육 양극화를 더 키워온 것이다.'(신문 사설)

한국교총은 '평가의 공개는 학력 차의 정확한 진단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상향평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며 '상대적으로 성취도가 낮은 곳은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통해 학력을 제고하고 성취도가 높은 학교는 더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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