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한·미 정상회담 택일 제대로 됐나

14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택일(擇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회담 날짜가 미국인들에게는 악몽같은 '9·11 테러'의 5주년 추념 기간과 겹쳐 있다.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 등과 관련, 대북 강경론 쪽으로 기울어있는 미국 정부 안에서 강경파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수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우리 정부가 굳이 정상회담 일정을 이 시기로 잡았다는 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정부 입장이 대북 강경론에 동조하는 쪽이 아니라면, 택일에 더욱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택일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유럽순방 행보와도 그다지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다. 노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통해 경제협력 문제 못지않게 북 핵·미사일 외교에도 주력했다. 평화적 해결에 대한 국제 지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순방국은 물론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을 개별적으로 혹은 회의 석상을 통해 만나서 우리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다. 이같은 노 대통령의 노력은 ASEM 폐막 때 평화적 해결원칙을 의장성명으로 명문화하는 성과까지 얻어냈다.

그러나 이 순간 9·11 테러 공포에 다시 휩싸여 있었던 미국 정부의 생각은 어떨까? 정상회담을 코 앞에 두고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자신들 입장에 맞서는 평화적 해결론에 대한 지지세를 확산시키고 있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법하다. 정상회담의 실무 협상을 주도해 왔던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순방기간 중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후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공동 언론발표문 등을 내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이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회담 날짜는 더 뒤로 잡혔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정상회담이 열려도 양측 간에는 파열음을 내거나 원론적인 수사(修辭)만 주고받는 식으로 끝낼 가능성이 높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대가(代價)라고 한다면 지나친 지적일까?

헬싱키에서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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