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임대수 作 '달력'

달력

임대수

못 하나 벽에 박고 해마다

한 해 치 생(生)을 한꺼번에 매달아 놓았다

더러는 너무 벅찬 날들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한 때도 있었다

살아가는 일은 만만찮아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는 날 많았다

나의 혼돈이 한 장 한 장 찢겨져 나갈 때마다

생은 자꾸 헐거워져

종내는 스치는 바람에도 덜렁거리는데

어느 새 불혹이 녹슨 추가 되어

남은 날들을 버티고 있다

새해 달력을 건다는 것은 의례적이다. 그리고 간단하다. '못 하나 벽에 박고' 걸면 그만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한 해치 생(生)을 한꺼번에 매달아 놓'는 일이다. 하루가 쌓여 달이 되고, 달이 쌓여 연(年)이 되고, 연이 쌓여 우리의 생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달력은 쌓여가는 세월의 기록이다. 기록되는 나날들, '더러는 너무 벅찬 날들이'라 '중심을 잃고 기우뚱한 때도 있'었다. 이렇게 달력을 보며 삶을 돌아보는 일은 지난날에 대한 회의와 자괴감에 젖어들게도 하지만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달력' 앞에 서서 '남은 날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절실한 가을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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