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는 지금 주거혁명중] ⑨건강한 집이란?

공기 청정기와 가습기는 한국식 아파트에 거주하기 위해 거의 필수가 되다시피한 주거용품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계절적 특성상 냉·난방이 필요하고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름과 겨울에는 자연환기를 포기하고 밀폐된 주거 공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질이 염화비닐 등으로 마감된 아파트에서 문을 닫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선 환기는 물론 적정 습도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기청정기나 가습기를 사용하더라도 자연 환기나 채광에 비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5월 환경부가 전국에서 신규 입주하는 아파트 7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실내공기의 질을 측정해 한 결과 전체의 50% 이상이 포름알데히드 및 톨루엔 권고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피부병이나 신경계 질환의 원인이 되는 포름알데히드와 톨루엔의 경우 환경부가 정한 신축 주택의 권고 기준은 일본 후생노동성이나 WHO(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분보다 두 배가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신축 아파트의 공기질 상태는 유해 가스실과 비슷한 상황이다.

주택업계는 "그동안 한국의 주거 문화 수준은 질보다는 공급에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들어 주택업체들이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주거의 질 향상보다는 아직도 평면이나 화려한 마감재 사용 등 보여주는데만 급급한 실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새집증후군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새 아파트 입주 전 시공사에서 보일러를 가동하는 방식으로 실내 유독물질을 배출(bake-out)하고 친환경 마감재를 시공하는 입주민들이 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새집 증후군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유독성 물질을 배출하고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새집 증후군 예방책에 불과한 수준이다. 유독성 물질이 줄어든다고 해서 주거 환경의 질이 크게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쾌적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환기와 습도, 채광 등의 조건을 한국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충족시키기가 어려운 탓이다.

건강 기준에 맞는 18℃의 온도는 냉·난방 기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마감재 대부분이 석재 또는 비닐류로 코팅된 벽지나 목재류여서 습도 조절 기능이 거의 없고 겨울이나 여름철 이산화탄소나 미세 먼지로 오염된 실내 공기를 외부로 내보내고 신선한 외기를 끌어 들일 수 있는 적절한 환기 장치도 없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주거문화 선진국에서는 채광과 환기 등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가 주택 신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이번 시리즈 취재과정에서 만난 독일 베를린시 주택국의 친환경주택담당 그리트 샤데씨는 "20여 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친환경 자재 사용은 이미 일반화돼 있으며 최근에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서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드는데 주거 정책의 초점이 맞혀져 있다."며 "친환경 주거 수준을 높기이 위해서는 입주민들의 관심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파트 입주 전 발코니 확장이나 리모델링에 관심이 집중된 우리의 현실에서 탈피해 여름이나 겨울철 환기가 가능한 강제환기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자연 정화 능력과 습도 조절, 방음 기능을 가진 흙벽돌이나 원목 등을 마감재로 사용하는 등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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