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색 가을'이 부른다…안동 북후 메밀꽃밭

하얀 가을. 메밀꽃이 피는 가을은 하얀 색이다. 왕소금을 뿌려놓은 듯 온 들판이 새하얀 메밀꽃밭은 그래서 황홀하다. 올 가을엔 메밀꽃밭으로 황홀한 여행을 떠나보자. 하지만 어디로?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여서일까. 강원도 평창군 봉평의 메밀꽃밭은 달빛 아래 솜구름이 깔린 듯하다. 소설 속의 무대로 들어가 보는 기쁨도 맛볼 수 있다.

전남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의 메밀꽃밭은 봉평의 아기자기함과는 달리 광활하다. 10여만평의 구릉에 메밀을 심고 산책로까지 조성해뒀다. 매년 봄 청보리밭 축제 후 보리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메밀을 심는다. 10일 간격으로 구역을 나눠 파종한 덕에 한 달 이상 꽃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곳 다 대구·경북지역에선 너무 멀다. 봉평은 승용차로 가도 3시간30분이 걸리고 고창은 다섯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거리.

아쉬우나마 가까운 곳으로 핸들을 돌려보자. 경북지역에도 메밀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학가산(해발 882m) 아래 자리잡은 이 마을은 지난해 농림부로부터 '경관보전직접지불제 시범사업' 마을로 선정됐다. '경관보전직불제'란 한계농지를 중심으로 일반작물 대신 메밀 등 경관작물을 재배하면 10a(300평)당 17만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해 주는 제도.

올해는 6만평 정도에 메밀을 심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금물. 아쉬운 건 한 곳에 집중적으로 심어진 메밀밭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군데군데 벼가 자라는 논이 있고 과수원이 자리잡고 있어 온 초원을 덮는 규모는 아니기 때문. 그래도 학가산 자락이 메밀꽃으로 온통 하얗기는 마찬가지다. 메밀꽃의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이곳엔 메밀꽃밭의 정취만 있는 게 아니다. 전체적인 여행 느낌으로 보면 봉평이나 고창에 비해 모자람이 없다. 일단 이곳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때묻지 않은 여행지라는 매력이 있다. 도로 곳곳에 나부끼는 메밀국수 광고플래카드를 보지않아도 된다. 아직까지 이곳 부근엔 메밀과 관련된 음식을 파는 곳이 한 곳도 없다. 그만큼 순수한 시골풍경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탓에 다른 관광객들도 찾아볼 수 없다. 간간히 사진작가들만이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정도다. 조용하게 가을을 느끼기에 이만한 곳이 드물다.

과수원 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곳만이 가지는 장점. 북후면사무소에서 신전리에 이르는 9.5㎞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지방도로.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좌우 양쪽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과수원이다. 흡사 과수원 속으로 난 길을 따라가는 기분이다. 차창을 열고 손만 뻗으면 사과가 닿을 만큼 가깝다. 사실은 메밀꽃밭을 보는 것보다는 이 과수원 길을 달리는 기분이 더 좋다. 과수원은 메밀꽃밭 사이에도 있다. 이곳에 서면 4색 가을을 느낄 수도 있다. 빨간 사과와 파란 하늘, 황금 들판, 하얀 메밀꽃이 장관이다.

이곳 메밀꽃은 주말인 16~17일쯤 절정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엔 50% 정도가 꽃을 피웠다. 때마침 주말이면 추석을 앞두고 고향으로 향하는 벌초행렬이 이어질 터.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 가을을 만끽하고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남겨도 좋을 듯하다.

메밀꽃을 보면 메밀국수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지사. 안동시에선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메밀관련 음식까지 팔아 농가소득을 높인다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탐스런 사과가 고픈 배를 더 괴롭힌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로변 과일 간이판매대 하나 볼 수 없다. 봉지씌우기 작업을 하고 있는 농부들에게 사과를 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식당이 없어 한적한 시골풍경을 감상하기엔 그만이지만 점심을 해결하려면 안동시내까지 되돌아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한다.

안동의 음식은 아무래도 간고등어와 헛제사밥, 매운탕 등. 안동댐 아래 상가밀집지역에 가면 갖가지 안동음식을 맛볼 수 있다. 시간이 있다면 상가 앞 월영교도 한가롭게 거닐어 볼만하다.

오가는 길에 특이한 볼거리가 있다는 것도 메밀꽃밭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메밀꽃밭이 있는 신전리에서 928번 지방도로를 타고 영주방면으로 4.5㎞를 더 가면 석탑사가 있는 북후면 석탑리. 이 마을과 절 이름은 모두 자연석을 이용해 쌓아올린 탑이 있는 데서 유래했다. '석탑리 방단형적석탑'(경북도 문화재자료 제343호). 이름마저 생소하다. 이 탑은 주변에 흔한 크고 작은 편마암을 이용해 피라미드 형태의 특이한 형태로 세웠다. 석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 신라 신문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걸로 봐 석탑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은 먼저 바닥에 정사각형을 만든 뒤 올라가면서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 현재는 5단. 한국에 남아있는 석탑의 양식 중에서도 흔하지않은 유형이다.

또 다른 볼거리는 '제비원 미륵불.' 안동시내에서 북후면을 향해 5㎞ 남짓 가다보면 오른쪽에 '이천동 석불상'이란 표지판이 있다. '연미사'라는 표지판과 함께다. 이 절은 몸통이 아주 커다란 돌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제비원 미륵불이다. 화강암 석벽에 10m 높이의 몸통을 새기고 2.5m 높이의 머리부분을 조각해 올려놓은 고려시대 마애불이다.

도로변에 있는 제비원 미륵불은 되돌아오는 길에 더 잘 보인다. 가는 길엔 자칫 지나치기 쉽다.

글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 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찾아가는 길=안동시내에서 영주방향 5번 국도를 따라간다. 5㎞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이천동 석불상이 있는 연미사가 있다. 다시 10㎞를 더 가면 북후면사무소가 있는 옹천삼거리. 신전리는 이곳에서 좌회전한다. 아주 좁은 길. 고불고불 3.1㎞를 가면 삼거리. '학가산등산로(신전리)'라는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해서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보면 도로변에 '학가산 등산로 안내도 사진'이 커다랗게 놓여있다. 신전리는 이곳서 1㎞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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