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 통가에서 지난 11일 총각 국왕이 탄생했다.
지난 10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통가의 타우파 아하우 투푸 4세 국왕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시아오시 투푸 5세는 금년 58세로 곧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결혼한 적이 없는 숫총각이다.
따라서 투푸 4세의 장남으로 왕권을 넘겨받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왕권을 넘겨줄 자식은 없다.
그가 올라앉은 옥좌는 언젠가 동생인 울루카탈라 라바카 아타 왕자나 장조카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권력에 담백한 편이어서 조금은 왕답지 않다는 지적까지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부왕과는 달리 통가의 민주화와 개혁을 앞장서서 추진하는 새로운 군주의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도 그래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기대와 전망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 때 외알 안경을 쓰고 다닐 만큼 괴짜 기질도 갖고 있는 그는 가난과 부패의 늪에서 허덕이는 조그만 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왕족이라는 특수한 신분 덕분에 가능했던 선진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해 왕도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배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스위스로 건너가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명문 사립 킹스 칼리지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런 다음 그가 들어간 곳은 영국의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학교. 영국 귀족들이 그러하듯 조국에 대한 충성과 명예를 몸에 익히기 위해서였다.
교육을 마치고 통가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인 정치수업에 들어가 부왕 밑에서 외무장관 등을 역임하며 국가 경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왕도를 닦는데 들이는 정성 못지않게 통가의 민주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배운 교육 덕분이었다.
반체제 언론에 대한 정부의 탄압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도 그였고 최초의 평민 출신 총리를 천거한 것도 그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동산, 은행, 통신, 항공사, 전력회사, 심지어 맥주회사에 이르기까지 통가에 있는 주요 산업의 이권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그 자신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정치보다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영어는 물론 독일어와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한 때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왕실 주변 일각에서 제기되자 결혼할 때를 놓쳤기 때문에 결혼을 못 한 것뿐이라고 자신의 독신 이유를 밝히기도 했었다.
왕세자 시절 올림픽 사이즈 풀장이 갖추어진 누쿠알로파 근교 이탈리아식 별장에서 취미로 일본 미술품과 장난감 병정을 수집하며 살던 그가 전제군주제와 다를 게 없는 통가사회에 변혁의 새바람을 몰고 오는 주역이 될지는 내년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즉위식을 전후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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