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눈동자에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수진(7·경북 군위군 의흥면)이는 아직 자신이 아프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소아집중치료실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다보니 어느새 날씨는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난다. 집에서 애타게 기다릴 증조할머니(92)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최대섭(33) 씨는 지난 7월 초 딸 수진이가 처음 쓰러져 정신을 잃었을 때 빈혈인줄로만 알았다. 최근 들어 수진이가 밥을 잘 안 먹은 탓이라고만 여겼던 것. 잔병치레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달리기를 하면 1등을 도맡던 건강한 아이였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름 뒤 수진이는 다시 쓰러졌고 깨어난 지 일주일 만에 또 쓰러졌다. 놀란 최 씨는 딸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심전도 검사를 한 인근 병원에선 심장에 이상이 있다며 더 큰 병원을 찾으라고 충고했다. 그렇게 해서 받아든 수진이의 병명은 부정맥과 3도방실차단. 심박동수가 지나치게 낮아 몸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정밀검사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또래 아이들의 심박동수가 1분에 80~100회인데 비해 수진이는 분당 32회 정도로 절반에도 못 미친 것. 목숨이 위험했다.
최 씨는 심박동기를 수진이 몸에 심자는 의료진의 제안에 동의했다. "딸아이 몸에 칼을 대게 하긴 싫었지만 약물치료를 할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니 어쩔 수 없었죠.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니 더 이상 두고 볼 수도 없었고요. 아이 얼굴, 다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넘어질 때마다 생긴 상처들이 제 가슴을 찢어놓네요."
11일 600만 원짜리 심박동기를 수진이 왼쪽 쇄골 밑에 심었다. 지름 5㎝, 두께 1㎝ 정도인 타원형 심박동기에 선을 연결하고 그 선은 심실 끝에 닿게 한 구조. 전기자극을 계속 줘 심박동수를 높이는 장치다. 의료진은 7년에 한번 정도 배터리를 갈아 끼울 뿐, 평생 이 기계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지만 병원비는 고스란히 짐이 됐다.
최 씨는 사업 실패 후 빚만 잔뜩 진채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상태. 아내는 수진이가 젖먹이일 때 집을 나갔고 이후 수진이와 제 오빠 기환(9)이는 증조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최 씨 어머니는 식당주방에서 일하며 가계를 꾸렸고 최 씨는 막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재산이라곤 아이들 증조할머니와 함께 사는 시골 허름한 농가 한 채가 전부.
며칠 전 수진이의 오빠 기환(9)이가 병원에 다녀갔다. 하지만 수진이 곁에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13살 이하는 소아집중치료실 접근이 금지돼 있기 때문. "함께 있을 땐 항상 티격태격하더니 병실에 누워있는 제 동생을 못 보게 하니 병실 문 앞에 주저앉아 울더군요. 수진이도 덩달아 우는 바람에 달래느라 혼났죠. 한참 둘을 달래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제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최 씨는 수진이 곁에서 밤을 지샌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처지지만 수진이 곁을 떠날 수 없다. 이미 한번 고비를 겪었기에 수진이를 항상 지켜보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수술이 끝난 뒤 녀석은 가만히 눈을 뜨더니 몸을 뒤척여 제 침대 한쪽에 자리를 내주더군요. 침대 곁에서 쭈그리고 앉아 자는 제 모습이 안타까웠던 모양입니다. 마음 씀씀이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어요. 못난 아비까지 챙기니.... 이젠 한 침대에서 수진이를 꼭 껴안고 잡니다. 더 이상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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