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 역도의 간판이자 90년대 씨름스타였던 이민우(41) 씨가 최근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배우자 권문희 씨는 이 씨가 지병이던 간경화 때문에 8일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다음날 숨을 거뒀다고 12일 말했다.
이 씨는 역도 최중량급 간판으로 활약하다가 갑자기 씨름으로 전향해 화제를 뿌린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울산고와 한국체대를 졸업한 이 씨는 고교 1학년이던 1983년 전국신인역도선수권대회에서 인상 1위, 용상 2위, 합계 2위에 오르며 화려하게 플랫폼에 데뷔했다. 주니어로서 시니어 못지 않은 기량을 뽐냈던 그는 1984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올라 한국 역도의 간판으로 자리를 잡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두고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씨름으로 갑자기 종목을 바꿨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1987년 9월 삼익가구에 입단해 샅바를 잡은 이씨는 장사가 돼 꽃가마를 탄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1991년 7월 여수장사씨름대회에서 백두 1품에 오르기도 했다.
1994년 11월 마산대회 출전을 마지막으로 모래판을 떠났다. 개인통산 전적은 221전 114승 107패로 승률은 51.6%였다. 이 씨의 유족으로는 부인 권 씨와 아들 상현(17) 군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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