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親부시 낙인찍힌 블레어 中東서 '천덕꾸러기'

국내에서 사임 압박을 받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중동지역에서도 '친부시 정치인'으로 낙인 찍혀 냉대를 받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중동 순방에 나섰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는 친(親)이스라엘, 친미국 외교정책 때문에 11일 레바논에서 성난 시위대 수천 명과 마주하는 곤욕을 치렀다고 영국 언론이 12일 전했다. 블레어 총리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푸아드 사니오라 레바논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회견장에 난입한 아일랜드 평화운동가인 카오임헤 버틀리로부터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는 블레어 총리의 방문은 "모욕"이라며 "토니 블레어 부끄러운 줄 알라.",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를 거부하라."고 외쳤다. 이 장면은 TV로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버털리는 경호요원들에 의해 손, 발이 들린 채 총리 청사 밖으로 끌려나갔다. 총리실 밖에서는 5천여 명의 시위대가 "살인자 블레어 물러가라.", "블레어는 대(大) 사탄 미국의 주구(走狗)다." 등 구호를 외치며 반블레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블레어 당신은 어린이 학살의 협력자다.", "레바논과 이라크의 전범으로 블레어의 기소를 요구한다."고 적힌 전단을 뿌리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유세프 누르는 "우리는 영국인을 존중하지만, 블레어와 영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한 헤즈볼라 출신 각료 2명과 다른 시아파 그룹 아말 출신 각료 2명은 블레어 총리와 정부 각료들이 만나는 자리에 참석을 거부함으로써 블레어에 대한 반감을 표명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번 방문길에 헤즈볼라의 중재자 역을 맡고 있는 나비 베리 레바논 의회 의장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출장 중이라서 만나지도 못했다.

헤즈볼라 대변인은 "헤즈볼라의 입장은 블레어가 어린이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휴전을 거부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에 동참한 부시, 콘돌리자 라이스와 같다는 것"이라며 "그는 여기에 와서는 안 됐다."고 성토했다.

블레어 총리는 9∼11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레바논 총리를 차례로 만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상이 양국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게 하는 등의 성과는 거뒀다. 하지만 중동문제 해결사로 남은 임기를 다하겠다는 블레어 총리의 의지는 마지막 방문국인 레바논에서 결정타를 맞았다. 블레어 총리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 시 줄곧 미국과 이스라엘 편을 들며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지 않아 레바논의 인명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여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교전으로 레바논 사람 1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집과 도로, 다리 등이 파괴되는 등 레바논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34일 동안 이스라엘의 폭격에 시달려야 했던 레바논 주민들에게 블레어는 결코 환영할 수 없는 손님인 것이다. 블레어 총리는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몇 년이 후퇴한 레바논 국민의 격한 감정을 이해한다."며 그럼에도 깨지기 쉬운 평화보다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자신의 입장을 재차 강변했다.

이미 중동지역에서 공정한 중재자라는 이미지를 잃었고, 국내에서 사임 여론으로 위신을 잃은 블레어 총리가 교착상태에 빠진 중동사태를 해결하고 평화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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