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쿨하게 산다] 대중문화 속 중요 코드로 '자리매김'

# 대중가요 속의 쿨

'그렇게 살지 말라고 내게 말하지/그냥 내 뜻대로 살 순 없는 거지

눈치만 보며 그렇게 사느니/차라리 죽고말지 그렇게 못살지

그래 나 원래 그렇고 그런 너/너와는 달라 폼 나게 살고플 뿐

쿨(cool)하게 가슴은 뜨겁게/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세상 쿨하게.'

마야의 '쿨(cool)하게' 가사의 한 부분이다. 이 노래는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마야의 모습처럼 '쿨하게' 살고픈 젊은 세대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쿨'이 대중음악, TV드라마, 영화, 출판 분야에서 중요한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쿨한 캐릭터가 아니면 상품성이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쿨 코드'는 서구적 합리성에 동화되고 있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쿨한 사람들은 만남과 사랑, 이별을 깔끔하게 처리한다. 사람의 관계? 정에 매이면 안 된다. 합리적이며, 피해를 주지도 당해도 안 된다.

캔의 노래 '내생에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보자.

'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내 세상처럼 누벼가며/두 주먹으로 또 하루를 겁 없이 살아간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기막힌 세상 돌아보면 서러움에 눈물이나

촛불처럼 짧은 사랑 내 한 몸 아낌없이 바치려 했건만/저 하늘이 외면하는 그 순간 내 생에 봄날은 간다.'

쿨한 삶은 세상에 당당히 맞서며 내 방식대로 밀어부치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살피면 비겁한 삶, 용기 없는 인생이다. 이 노래에는 그렇게 살고픈 젊은 세대의 생각이 담겨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녹하던가? 그래서 서러움에 눈물이 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청춘이 가고 만다.

# 영화 속의 쿨

정통 멜로영화의 주인공들은 멋지고, 예의 바르고, 품위있다. 사려심이 깊고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요즘 멜로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마음내키는 대로 사는 것 같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얼음처럼 차갑다. 최근 개봉한 김해곤 감독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이런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달콤한 밀어 대신 'XX놈', 'XX년' 등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산다. 불같이 화를 내고 서로 주먹질을 하다가도 침대 위에서 함께 뒹군다.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실감나는 캐릭터이다. 놀고 먹는 백수 영운(김승우)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서 지금껏 사겨왔던 작부 연아(장진영)와 갈등이 깊어진다. 연아는 영운을 쿨하게 보내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를 보자. "여자에게도 첩이 필요하다."라는 여 주인공(엄정화)은 애인을 두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녀는 애인(감우성)에게 옥탑방까지 얻어주며 생각날 때마다 찾아간다. 남편 따로, 애인 따로, 결혼 따로, 연애 따로. '쿨한 사랑'을 신봉한다.

영화 '해변의 여인'은 여행길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 두 남녀의 '원 나이트 스탠드'(단지 섹스를 즐길 목적으로 하룻밤을 같이 지내는 것) 이야기이다. 밀고 당기기? 그런 것은 초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곁에 있는 애인 걱정?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나, 슛팅한다고 다 골인되나? 속전속결, 서로의 마음 확인했으니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것이다.

# 패션 속의 쿨

패션계에도 예외가 아니다. 쿨한 삶의 상징하는 대표적인 패션이 '차브(chav) 패션'이다. '차브'는 원래 악취향의 패션을 즐기는 싸구려를 자처하는 청소년의 문화를 의미한다. 차브는 '아이'를 뜻하는 19세기 집시 언어 'chavi'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브들은 번쩍거리는 금장식을 좋아해서 커다란 고리 귀고리와 두꺼운 목걸이 등을 착용한다. 또 하얀 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야구 모자와 유명 기업의 로고가 크게 쓰인 티셔츠도 차브들의 선호 품목이다. 결국 차브 패션은 세련미와는 동떨어진 악취향의 패션인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차브는 양아치이며 그들의 옷차림은 양아치 패션이다. 그런데 부정적 의미를 가졌던 '차브'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고 의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2004년 최대의 유행어가 되어 신조어로 옥스퍼드 대학사전에 올랐으며, 그 유행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스타일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시작으로 제니퍼 로페즈, 베컴 커플 등 유명인들이 선호하면서 21세기 쿨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 책 속의 쿨

출판에서도 쿨한 바람이 불고 있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지음)는 한 여자가 두 명의 남편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왜 일처다부제는 안 될까? 작가는 고정관념과 기성세대의 사고의 틀을 깨고 일처다부제의 정당성을 아주 쿨하며 깔끔하게 풀어가고 있다. 이밖에도 서점가에는 '여자 우리는 쿨하다', '나쁜 여자 쿨한여자', '쿨한 인생 만들기', '부부 쿨하게 살기' 등 쿨 코드를 다룬 책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쿨한 삶의 이면에는 개인주의적 취향, 조건적인 만남, 이해타산 같은 까칠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최근 TV드라마에서는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처럼 '웜(warm) 코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쿨 코드'가 지배하고 있지만, 조건과 이해관계를 넘어선 남녀의 사랑과 가족애가 그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2006년 9월 14일자 라이프매일)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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