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문지 위에 먹으로 연필로 볼펜으로…최병소 개인전

최병소(63), 그의 작품은 오묘하다. 신문지 위에 먹을 칠하거나 볼펜으로 빈틈없이 빽빽하게 그은 후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선을 긋는다. 그 결과 신문지에는 신문이었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날짜도, 기사도 모두 지워지고 몇 겹의 연필 자국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졌다. 마치 흑연 덩어리같다.

신문지 위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빽빽하게 선을 긋는 그의 작업은 노동에 가깝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노동의 흔적을 간직한 채 전혀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한다. 신문지도 아니고 연필도 아니다. 평면도 아니고 입체도 아니다. 먹물로, 볼펜으로, 연필로 몇 겹을 겹쳐 긋고 나면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신문지는 오랜 풍화를 거친 양철조각처럼 바스라진다. 작가를 대하다 보면 그의 작품처럼 바스라질듯 집요한, 그러나 겸손한 고집이 느껴진다. 국내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유신시대 통제된 언론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검열"이란 의미를 부여해왔고 프랑스 평론가들은 "묘한 엑스터시가 느껴진다"고 평했다.

최씨는 3년만에 갤러리M에서 28일까지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신문지 작업과 함께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너덜너덜해진 신문지를 쌓아두고 그 맞은편에 철학비판 원서 '의미와 무의미'를 펼쳐두었다. 그 책갈피 위를 문진으로 눌러둔 작품. 사실 그 문진에는 '소설같은' 사연이 숨어있다. 2003년 세계 최고 수준의 프랑스 아트페어에 참가했을 당시 프랑스 대부호 부부가 그의 작품에 매료된 것. 그들은 최씨의 모든 작품을 구매할 의사를 밝혔는데 하필 전용비행기 추락사고로 부부 모두 숨졌다. 그 인연으로 그는 2005년 그의 부인이 운영했던 IBU 갤러리에서 2005년 전시회를 가졌다. 설치작품 속의 문진은 IBU 갤러리 큐레이터가 최근 그에게 전해준 그 부인의 작품.

이번 전시에는 침묵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그의 작품 12점이 전시된다. 최씨는 "큰 작업실이나 비싼 화구가 없기 때문에 담뱃값 정도로 할 수 있는 간편한 작업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작품이 전해주는 울림은 꽤 크다. 053)745-4244.

조문호기자 ns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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