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아나 팔라치'.
158㎝의 키에 몸무게 105파운드의 가냘픈 여자이면서도 20세기 세계를 뒤흔든 거물 정치인들을 멋대로 주므르다시피했던 여걸 오리아나가 엊그제 76세 나이로 他界(타계)했다.
생전에 헨리 키신저, 호메이니, 바웬사, 셀라시에 황제, 등소평, 인디라 간디 등 수많은 名士(명사)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내면을 벗겨내 금세기 최고의 인터뷰 작가로 명성을 드날렸던 오리아나. 그녀는 인터뷰 대상이 어떤 권력자든 화를 돋우고 모욕적인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면서도 권력자가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을 끄집어내는 독특한 재주와 근성을 지녔었다. 그녀가 호메이니를 인터뷰했을 때 차도르와 여성 인권에 대한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어왔지만 호메이니와 대면하자마자 "당신네 부하들이 차도르와 여성이란 단어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차도르와 여성 이야기부터 먼저 시작합시다. 그럼 여성과 차도르에 대해…" 결국 까다로운 호메이니 옹도 그녀의 끈덕진 청문 기법에 말려들어 여성과 차도르에 대한 1대 1의 청문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등소평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그가 싫어할 만한 질문을 골라서 계속 던졌다. 참다못한 등소평의 목소리가 커졌고 급기야 '당신 부친에게도 그렇게 한 적이 있소?'라고 고함쳤다. 그녀가 '물론이죠'라고 하자 '그럼 부친께서 따귀를 때렸나요? 따귀를 맞아야 마땅하겠는데.' 그러자 그녀가 또 대들었다.
'내 따귀를 때리고 싶은 거죠? 때리세요. 여기다 그대로 적을 테니까.' 기가 찬 등소평도 웃고 말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속으로 재인터뷰를 했으면 했던 그녀에게 등소평 쪽에서 '다시 한번 만나자'고 하자 순간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와락 달려가 등에게 키스를 했다. 놀란 경호원들이 돌진해 오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등소평은 세계 최고의 청문 전문가인 오리아나의 키스를 받은 유일한 정치인이 된 셈이다.
그녀는 인터뷰든 청문이든 역사적 진실을 캐거나 인물의 됨됨이와 지도층의 내면 세계와 소신을 끄집어낼 때 결코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 같은 평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세계 최고의 인터뷰 청문 전문가로 인정받게 한 무기였다. 그녀와 함께 세계적인 인터뷰 전문가로 인정받은 톰 모건(WYNC그룹 회장)도 한 사람의 핵 물리학자와의 인터뷰를 위해 그 학자가 쓴 1m가 넘는 부피의 핵물리학 관련 자료와 논문을 2주일 동안 다 읽고 다시 그의 에세이집까지 통독한 뒤 인터뷰 청문에 나선 프로다.
유명한 바버라 월터스 역시 인터뷰 전에 길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면접하려는데 어떤 질문을 해 볼까요'라고 질문거리를 모았다. 겁없는 질문, 준비된 질문, 여론의 사전 진단, 모두가 인터뷰 청문에 임하는 세계적 프로들의 자세다.
그런 오리아나나, 톰 모건, 월터스가 어저께 열린 대한민국 교육 부총리의 청문회에서 보여준 일부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봤더라면 어떤 평가를 했을까. 한마디로 톰 모건은 '신문기사만 몇 줄 보고 나왔구먼'했을 것 같고 월터스라면 길거리나 학교 교문에 나가서 학부모들, 학생들, 학원강사들, 입시 담당 교사'교수들을 만나서 '어떤 질문을 해야 후보자가 장관감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라고 생생한 질문들을 꾸려왔을 것 같다. 오리아나라면 아픈 다리 들어주는 식의 질문이나 가재 게 편들 듯하는 옹호성 질문 대신 '장관 감투 쓰는 것을 학자 소신 지키는 것보다 더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을지 모른다.
앞으로 모든 청문회는 정략과 당략에 발목 묶여 할 말 못할 말 눈치 봐가며 쭈뼛거리고 송아지 껌 씹듯 어물대는 일부 국회의원은 빼버리면 어떨까. 대신 교육 문제엔 학부모'학생'교사들이, 경제나 노동 문제엔 근로자와 철공소 사장'시장상인들이 질의석에 앉으면 오리아나, 월터스, 톰 모건 못잖은 생생한 청문 질의가 쏟아질 것 같은데 말이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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