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서 있는 것과 같이 느껴져 잠시도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학생이 있었다. 어디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안하여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생의 인문적 소양이 꽤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일반적인 상담보다는 과학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시카와 미츠오의 '동양적 사고로 돌아오는 현대과학'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같이 읽었다.
개방계를 지닌 생명체, 즉 인간은 늘 안정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안정이란 도대체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매끈한 그릇 모양의 곡면에 구슬을 넣으면 도르르 소리를 내면서 구르는데 그러다가 맨 밑바닥에서 딱 멈춘다. 이것이 열역학상의 안정상태(평형상태)이다. 그러면 이 안정은 생명체의 안정일까? 평형상태의 안정은 그릇 속이라는 폐쇄계 안에서의 안정이다. 개방계인 생명체는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여러 가지 힘이 항시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릇의 바닥에 있는 구슬과 같은 안정상태가 아니다. 우리들 생명체의 안정을 나타내는 모델은 이렇다.
경사면이 매끈한 산을 가정하고 그 정상에 구슬을 놓는다. 그러면 구슬은 여러 방향으로 굴러갈 가능성이 있다. 이 구슬은 그릇 밑바닥의 구슬과는 달리 완전히 균형 잡힌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물리학적으로는 비평형상태라 부른다. 정상의 구슬은 어느 방향에서건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으면 곧장 굴러 떨어진다. 불안정한 가운데 안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많은 가능성을 지닌 안정이다. 결국 비평형상태의 안정은 다음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안정성인 것이다.
개방계인 인간은 쉬지 않고 변화하는 외부의 조건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컵 바닥에 한정되어 있는 안정으로는 갖가지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 생명체의 안정이 언뜻 보기에 서커스의 줄타기같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외계의 변화에 대하여 언제나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함이다. 개방계인 생명체는 이처럼 죽을 때까지 비평형적인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다이너미즘(dynamism)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학생은 생명체의 신비와 우리 삶의 특징적 단면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글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 삶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온갖 예측불허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생활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 후 경쟁과 긴장조차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불안정한 피라미드의 꼭짓점을 모든 가능성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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