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미지 作 '나비'

나비

김미지

가을 전어라, 그 가을 한 철

퍼득이는 바다를 끌고

비린 생을 끌고 이 차에서 저 차로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질질 길바닥에 물길을 내면서 출렁출렁

어지럼증의 수족관 트럭, 길 위에서 연명하는 날들의

지리한 항해

도마 위에 놓여지는 순간

날선 사시미칼이 먼저 훑어내는 갑옷 비늘과

서걱서걱 잘라내는 등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

멱을 따고 배를 갈라 내장을 훑어낸

분리된 몸통이 해수에 씻겨지는 동안에도

팔딱팔딱 뛰고 있는 푸른 은빛 아가미

잘린 목에서 나비 한 마리 폴폴

가을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이 가을, 전어회를 먹으며 전어의 '비린 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전어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족관 트럭에 실려 '질질 길바닥에 물길을 내면서' 왔겠지요. 그렇게 하여 전어 삶의 마지막 자리, '도마 위에 놓이는 순간', 인간의 식욕을 돋우는 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대는 '마음의 눈'으로 전어를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전어의 '잘린 목에서 나비 한 마리 폴폴/ 가을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나비'를 보는 순간, '전어'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귀한 생명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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