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포럼]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제도 활용을

인력의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노동시장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성장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그 주된 장소가 과거처럼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되지 않고 동네 중소형 마트나 컴퓨터 오락실, 주유소, 규모가 있는 김밥집에까지 그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넓어지고 있다.

노동정책의 중심 또한 시장의 수요에 맞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인터넷과 전자우편은 행정의 각 분야에서 내외적인 의사결정과 유통에 있어서 일대 혁명을 가져온 지 이미 오래다.

우편이나 방문접수에 의해 민원을 접수받아 법위반에 대한 처벌과 시정을 통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던 권위주의적이고 수동적인 행정 시스템은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로 전락, 방문지도와 대량 메일서비스를 이용, 새로운 제도와 행정이용의 편의사항을 공격적이라고 할 만큼 분주하고 신속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대구지방노동청에서 가장 분주한 곳은 임금이나 퇴직금 체불로 인해 연간 9천여 건이나 접수되는 신고사건을 처리하는 근로감독과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본의 아니게 임금이나 퇴직금을 지불하지 못한 사업주, 출근하자마자 하루 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은 근로자,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고 잠적해 버려 하소연 하는 근로자 등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제 때 주고 받지 못하거나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민원들이 매일 수북하게 쌓인다.

이 가운데 퇴직금은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서 계속해서 1년 이상 종사한 근로자라면 누구나 청구할 수 있는 금품으로 퇴직하는 근로자에게는 저축한 것처럼 목돈이 되어 요긴하게 사용되지만, 한꺼번에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사업주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사업을 하다 보면 맑은 날과 흐린 날이 교차하듯 경기가 어려우면 퇴직금이나 월급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퇴직금과 임금을 받지 못한 민원의 비중은 전체의 99% 이상에 이른다.

그래서 정부는 퇴직금제도에 대한 사업주의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노사가 합의해 퇴직금운용에 따른 소정의 규약을 정한 뒤, 사업주로 하여금 매년 1회 이상 일정액의 퇴직금 부담금을 금융기관에 개설한 자신의 구좌에 불입하도록 하거나 근로자 개인별 구좌에 직접 불입하여 근로자 본인의 책임하에 요긴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로 사업주는 한꺼번에 안게 될 목돈 부담에서 벗어나 매년 당해 년도의 퇴직금을 중간정산하여 지불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근로자는 사업장의 부도 등으로부터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불안에서 벗어나 직장 생활의 처음부터 은퇴까지 자신의 계획에 따라 매년 적립되는 퇴직금을 노후자금으로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없고 법을 몰라서 다툼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변화를 두려워 하고 장래를 대비할 줄 아는 미래경영의 철학이 부족한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관계 갈등은 서로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할 줄 아는 아량과 지혜가 없어 생기는 것이다.

머지 않은 장래에 근로자를 한 사람이라도 고용하고 있는 모든 사업장은 퇴직금을 부담해야 할지도 모른다. 옷가게나 소규모 동네식당, 중국집, 비디오방, 목욕탕 등 거의 대부분의 사업장이 예외없이 퇴직금지급 의무와 같은 노동관계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관계는 이제 특별하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라면 누구나 부딪혀야 하는 일상의 일이 된 것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가 잘 풀리지 않아 사업이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시기에 남보다 앞서 편리한 제도를 활용할 줄 알고, 한걸음 더 나아가 약한 자를 좀 더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노사관계 측면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밝아지지 않을까 싶다.

최준섭 대구지방노동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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