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늙으면 죽어야지?

우스갯소리로 공인된 3대 빈말이 있다. 노인들 '늙으면 죽어야지'와 장사꾼들 '밑지고 판다', 노처녀 '시집 안간다'는 것이라던가.

우리 병원에는 노인들이 많이 오는 편이다. 대부분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 고통스럽기도 하거니와 치료도 쉽지 않다. 진료를 하다보면 노인 분들은 하기 쉬운 푸념을 하신다. "늙으면 죽어야지.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괜찮은데 죽지도 않고 자식들 고생만 시킨다"고.

딱히 할만한 일도 없는 데다, 나이가 들고 몸은 불편하고 살림도 넉넉지 못하다 보니 편치 않은 마음에 나오는 한숨일 것이다. 늙으면 죽어야 하나?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은 73세, 여성은 80세로 알려졌다. 미국 남성 75세, 여성 80세, 영국 남성 76세, 여성 81세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의 평균수명도 선진국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미국 하버드대학 블룸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평균수명이 1년 늘어나면 4%의 생산성 증가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보건 수준에서 우리도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에서도 주목할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문제는 '건강 수명(Healthy Life Expectancy)'이다. 건강수명은 전체 평균 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 받는 기간을 제외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한 기간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남자 평균 건강 수명은 64.8세, 여자 70.8세로, 남자의 경우 미국 67.8세를 크게 밑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건강한 고령화 사회가 아닌 '병약한 고령화 사회'에 머물러 있다. 치매나 중풍 등 노인성 질환뿐만 아니라 퇴행성관절염, 척추협착증 등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많다.

신체의 각 부위는 40, 50대 못지않게 정정한데 유독 무릎과 허리가 퇴행성관절염으로 꼼짝도 못하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 예상외로 많다. 또 시골에서는 퇴행성척추질환으로 허리를 펴지 못해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노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농촌마을은 노인회관 앞에 유모차가 10, 20대씩 주차(?)해 있을 정도라고 하니....

노령화 사회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수히 많다. 노인 일자리 늘리기, 여가 활용을 위한 공간 확충 등. 그러나 무엇보다 불요불급한 것은, '평균 수명'과 '건강 수명' 간 10년의 간격을 좁히는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2010년까지 3조 4천억 원을 투입하여 건강 수명을 72세로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정부 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도 어떻게 노령화 사회에 대처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할 때이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노인들의 한숨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서중교 에스제통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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