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만발했다. 강원도 태백 금대봉(1418m)에서 대덕산(1307m)으로 이어진 산자락. 이곳은 지금 온통 가을들꽃 천지다.
출발지는 태백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룬 두문동재(싸리재·1268m) 고갯마루. 백두대간의 능선이지만 힘들게 산행을 해야 하는 곳은 아니다. 태백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고갯마루를 지난다. 포장도로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로다. 최근 두문동재 터널이 뚫리면서 한적해 가을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적격이다.
고개 정상 부근 산불감시초소 오른쪽으로 넓은 임도가 나있다. 임도는 금대봉까지 이어진다. 9월 중순이라기엔 서둘러 외투를 꺼내야 할 만큼 싸늘한 기온이다.
입구부터 자줏빛의 벌개미취와 각시취가 마중한다. 하지만 감탄하기엔 이르다. 이 정도에 놀란다면 30분쯤 뒤 펼쳐질 '천상의 화원'에서는 어찌할텐가. 15분 정도 임도를 따라가면 금대봉으로 오르는 입구, 헬기장이 있는 곳이다. 차츰 야생화 군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대신 왼쪽의 임도를 계속 따른다. 고목나무샘 방향이다. 습기가 가득한 고개를 다시 넘는다. 키 작은 산죽이 들어찬 좌우 숲엔 들꽃이 많지 않다. 유독 응달에서 자줏빛이 강한 투구꽃이 더욱 정답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두문동재에서 출발한지 30여분(길가 야생화마다 인사를 건네다 보면 좀 더 늦어진다). 길이 다시 넓어지면서 비로소 꽃밭이다. 나무도 없는 확 트인 고원지대. 고도계가 해발 1,330m임을 표시해준다. '대덕산,금대봉 생태계 보전지역'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임도 주변으로 조금씩 보이던 까실 쑥부쟁이와 각시취 등으로 온통 자줏빛이다. 그 사이로 연보랏빛 둥근이질풀과 주황색 동자꽃, 노란 두메고들빼기도 고개를 내민다. 두메고들빼기는 제철이 지난 듯 풀이 죽어있다. 연신 카메라셔터를 누르며 고목나무샘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가다보면 나무 한그루 없는 구릉이 나타난다. 가을꽃들의 잔치는 이곳에서 절정이다. 산 능선 전체가 꽃밭이다. '금대봉 천상의 화원'이란 표현은 이곳을 두고 한 말이었다. 싸늘한 날씨임에도 이꽃 저꽃 옮겨다니는 갖가지 나비들까지 신이 났다. 꽃 하나하나의 이름은 또 왜그리 정다운지….
아쉬운 건 이 구릉을 붉게 물들였을 여름의 하늘나리 등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자리를 고려엉겅퀴 등 보랏빛 가을꽃들이 벌써 차지해버렸다.
이곳은 곰배령처럼 출입을 통제하진 않는다. 자세히 보면 꽃밭 사이로 사람들이 다닌 통로가 나있다. 이 통로를 따라 거닐면 될 터. 하지만 이 통로를 따라가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닥에도 노란 양지꽃 등 온갖 야생화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까치발을 하게 된다.
이곳의 야생화는 10월말까지 만발한다. 평지에 비해 기온이 5~6℃ 낮으므로 바람막이 옷은 필수. 식물도감이 있으면 금상첨화. 주말이면 두문동재 입구 초소에 숲 해설가가 대기하고 있어 동행을 부탁하면 좋다. 야생화는 눈으로만 호사를 즐기고 마음에만 담는 것도 잊어버리지 말 일이다.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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