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도광의 作 '코스모스 앞에서'

코스모스 앞에서

도광의

간이역 코스모스 앞에서

지난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미군 깡통으로 이은 지붕 위로

덜커덕덜커덕 기차 지나가고

담뱃갑으로 바른 장판엔

헝겊 같은 가난이 비친다

개빈다리* 소 허벅지에 붙어

피 빨아 먹고

파리똥 가뭇가뭇한 벽에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 걸려 있는

지난 슬픈 세월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간이역 코스모스 앞에서

지난 모습 생각해 보았다.

* 개빈다리 : 소 피 빨아먹는 빈대 모양의 기생충을 가리키는 경상도 방언

우리의 지난 날은 궁핍했다. 가을이면 그 궁핍한 시대가 흑백의 동영상이 되어 가슴으로 떠오른다.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간이역을 만나면 더욱 그러하다. 간이역이 우리의 궁핍한 시대의 유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 우리네 집은 '미군 깡통으로 이은 지붕'이었다. 수시로 그 위로 '덜커덕덜커덕 기차'는 지나갔다. 방바닥은 '담뱃갑으로 바른 장판'이었고 '파리똥 가뭇가뭇한 벽에'는 장식이라고는 '빛바랜 흑백 사진'이 전부였다.

그 시대, 가난으로 엮어진 추억이지만 인간성이 살아있다. 그래서 우리를 사무치게 한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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