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랜 동안 심사숙고해 오던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작년 3월, 일본은 새로 출간한 검인정 교과서를 통해 한국사 왜곡을 강화했고, 한국민을 조롱하듯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까지 출간했다. 그 동안 조용한 외교를 통해 독도 문제 등에 대처하던 정부는 이런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 바른역사기획단을 출범시키고 동북아역사재단설립의 한 기틀을 마련했다.
이에 앞서 일본의 한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는 두 기관을 고려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와 고구려역사재단이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2001년 일본교과서의 한국사왜곡에 대해 한국인의 항의가 빗발치자 고이즈미 총리가 내한, 제안하여 설립한 것으로 2002년 5월부터 3년간 한일역사학자들이 합동연구활동을 폈다. 그 성과가 왜곡된 역사교과서 문제를 시정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지만 다시 제 2기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이에 비해 고구려연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구려역사를 비롯한 한국의 고대사를 훼손하자 여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출범한 것이다. 고구려연구재단은 2년여의 연구활동을 통해 괄목할 만한 업적을 생산했고 중국측 주장을 체계적으로 반박해 왔다.
그 동안 주변국의 역사도전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이렇게 대증요법(對症療法)식이었다. 일이 터질 때마다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구를 만들고 방법을 강구했다는 뜻이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일부 고위층조차도 이런 대증요법에 안주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런 대처방안이 갖는 한계에 대해 관련 식자층과 시민단체는 우려를 표명했다.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통합적인 컨트럴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동해 문제 등에 대처하기 위해 출범한 바른역사기획단과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고구려역사재단이 통합, 동북아역사재단으로 출범하게 된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오랜 진통 끝에 이달 28일 출범할 동복아역사재단은 "동북아의 역사문제 및 독도관련 사항에 대한 장기적 종합적인 연구 분석과 체계적 전략적 정책 개발을 수행함으로써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및 번영의 기반을 마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사업도, 동북아시아 역사정립과 독도관련 사항에 대한 조사 연구, 동북아역사와 독도관련 전략 정책의 개발 및 대정부정책 건의, 독도 동해의 표기관련 오류시정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항구적 평화정착 기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렇게 출범하게 되었지만 안고 있는 과제는 지난하다. 국민들은 우선 이 재단의 지속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유사기구의 중도하차가 반면교사가 되어 이런 우려를 낳게 한다. 그 동안의 역할로 상당히 기대됨직한 기구였고 정부출연기관으로서의 위상도 갖추어진 고구려연구재단이 정부정책의 변화로 중도하차했다는 것은 정부의 공신력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이 점은 갓 태어난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서도 회의와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이 재단은 우선 고구려연구재단의 연구 방향과 업적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지속가능한 기구임을 입증하고 추락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재단이 연구와 정책수립의 양면을 조화하는 문제도 관심거리다. 재단을 출범시키면서 더 강조된 것은 정책기관으로서의 성격이다. 그러나 정관에는 엄연히 연구기능이 앞서 명시되어 있다. 연구 없이는 정책수립이 불가능하고 또 대외관계 정책수립이 증거와 진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는 점에서 연구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온축된 연구가 대안적 정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재단은 관민/민관 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출연기관이 갖기 쉬운 관주도의 성격과 대외적으로 정부를 대변한다는 어용화의 우려를 불식하는 것은 급선무다. 관의 효율성은 바람직하지만 그 경직성은 연구와 대안정책에서 나타나야 할 창의성과 기민한 처변(處變)성을 저해할 수 있다. 때문에 행정력이 관여할 수 있는 공간과 민간두뇌들의 창의적인 참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출발 때부터 세심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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