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샌프란시스코의 호하스(Rojas)교육감이 대구광역시 교육청을 방문하여 교육 및 문화 교류 협정 채결의 뜻을 밝히고 경주와 서울을 거쳐 귀국했다. 그는 그해 10월 나를 초청했다. 우리 교육청의 산적한 업무 관계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10일 정도의 방문 계획을 세우고 11월 5일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승객으로 꽉 찼고, 긴 여정을 앞둔 긴장 때문인지 무척 조용했다. 나는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지게 되니 긴장이 풀리면서 무인도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동안 나는 바쁜 시간 속에서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고, 내가 일을 만드는 건지 일이 나를 따르는 건지 일속에만 묻혀 살았다. 심지어 열 손가락 손톱을 한꺼번에 다 깎아보지를 못했다. 꼭 손톱 깎는 중에도 무슨 일이 생기곤 했다.
기내(機內), 이렇게 편안하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곳이 있었던가. 나를 바쁘게 하던 요정들이 고공으로 나는 비행기 안까지는 침입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득 기내란 말 때문에 망신을 당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1986년 6월, 중둥교육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문교부에서 주관하는 각 시·도 중등과장 또는 학무국장 유럽 교육 시찰에 참가했다. 너무 바쁜 중등교육과 일 때문에 미처 여행 일정표도 보지 못하고 늦게 집으로 퇴근했다. 기다리던 딸이 외국 어느 나라로 가느냐고 묻는다. 그때서야 일정표를 보니 '파리 1박, 런던 2박, 로마 2박........기내 1박'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무심코 딸에게 물었다. "다른 도시는 다 알겠는데 기내가 어느 나라에 있노?" 딸은 웃음을 참지 못하여 데굴데굴 구른다. 그제야 나도 비행기 안이라는 것을 깨닫고 같이 웃었다. 이 소문이 퍼져 내가 외국에만 나가면 친구들은 또 기내에 가느냐고 놀려 댔다.
11월 6일, 샌프란시스코 통합 학교구와 대구광역시 교육청은 교육 및 학예의 교류와 양국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을 위하여 양해 각서를 채결했다. 주요 내용은 ① 양 도시간 교육행정가, 교사 및 학생 교류 ② 필요한 교육 자료의 교환 ③ 교육정보의 교류 ④기타 양 도시의 선린과 문화의 교류 등이었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교사와 장학사들이 방학 때마다 대구에 와서 영어 교사들에게 영어 회화 연수를 성의 있게 해 주었다.
교류 협정을 체결한 후 샌프란시스코의 유·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였으나 학생 수준이나 교과 내용이 우리보다 나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컴퓨터 보급도 우리보다 앞서지를 못했다. 그러나 교실에서의 교육 방법이나 교육 분위기는 우리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교사들이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규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명문교인 로웰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교장 선생님의 학교 현황을 들어보니 이곳에도 한국과 중국 교포들이 그 학교 입학을 위하여 가이주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일종의 위장 전입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우리 국민들의 교육열은 대단히 높고 극성스럽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번 교육 문화 교류에서 우리 교육도 넓은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그 속에서 이상을 더 넓히고 도전적 의지를 더 굳게 다져야 한다는 것을 배워 왔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 실행해 나가야 한다.
김연철 (전 대구광역시 교육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