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판 6개월'…수입쌀인지 알고나 먹게 해달라

수입쌀은 어디로?…국산쌀 둔갑 부정 유통 '속출'

"도대체 누가, 어떻게 수입쌀을 유통시키고 있는 겁니까."

대구·경북농민들은 2005년분 수입쌀이 모두 팔렸는데도 수입쌀 유통, 판매구조를 전혀 알 수 없다고 가슴을 치고 있다. 수입쌀 공매가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다보니 수입쌀이 국산쌀로 둔갑해 부정 유통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원산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식당용 밥쌀로 대거 공급돼 국산 쌀 시장은 물론 소비자들의 알권리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국회와 농민단체들은 향후 수입쌀에 대한 음식점 원산제 표시제 도입과 양곡유통 구조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수입쌀은 어디로?

대구 쌀집들을 한참 헤매도 수입쌀 유통 구조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구 쌀 도매상가들이 밀집한 한 시장. 중국산 쌀과 미국산 쌀이 모두 팔렸는데도 이곳에서 유통되는 수입쌀은 발견할 수 없었다. 한 상인은 "소비자 불신을 우려, 공매에 참가한 업체가 단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한 상회가 수입쌀 공매업체를 통해 일부 물량을 사들이긴 했지만 양이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수입쌀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수입쌀들을 최초 유통시키는 공매업체들은 대구 15곳과 경산·구미·포항·안동 각 1곳 등 모두 19군데. 하지만 공매업체 파악조차 여간 힘들지 않았다. 정부가 공매업체들에 미칠 피해 최소화를 위해 업체 '상호'와 '공매량'을 전혀 공개 않고 있기 때문. 원산지 거짓 표시를 단속하는 구·군청 공무원들조차 구·군내 공매업체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수입쌀을 판다.'는 문구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대구 공매업체 1곳을 찾았고, 이 업체 등을 통해 3개소를 더 알아냈다.

현장을 방문하거나 전화통화에 성공한 공매업체 3곳에 따르면 수입쌀 유통구조는 천차만별. A업체는 공매업체이면서 소매업체 형태로 소비자와 바로 연결돼 있었고, B업체는 동네쌀집을 거친 3단계, 마지막 C업체는 1, 2차 중간상인을 거친 4, 5단계를 통해 수입쌀을 유통하고 있었던 것.

이처럼 수입쌀 유통구조가 다양한 탓에 그 만큼 부정유통 사례가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구·경북엔 7월말 현재 전국 19곳의 부정유통 적발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5곳이 몰려있다. 지금까지 총 적발량만 38.3t. 20kg 기준으로 2천포대 가까운 수입쌀이 국산쌀로 둔갑해 시중에 풀렸거나 풀릴 예정이었다. 이 중에는 중국산쌀(33.5t) 부정유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정유통을 한 업소는 일반 양곡업체 3곳, 정미소 2곳으로 나타났으며 신원 미상의 사람들로부터 쌀을 산 업체도 있었다.

농산물품질관리원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적발된 부정유통 사례는 감독이 쉬운 최초 공매업체를 제외한 중간 상인들과 소매업체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게릴라 형태로 움직이는 수입쌀 중간상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부정유통을 뿌리뽑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음식점>공단>영세민

2005년분 수입쌀 전량이 팔렸는데도 일반인들이 수입쌀 유통경로를 알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수입쌀 절대 다수가 식당, 공단으로 빠져 나가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

대구 서문시장 내 한 쌀 도매상가는 "수입쌀을 찾는 거의 대다수가 식당"이라며 "특히 중국산쌀을 찾는 음식점들이 많아 내년부터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입쌀 공매나 중간 도매를 시도해 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에서 가장 많은 물량을 취급하는 한 공매업체 관계자는 "포항,구미 등 경북 중간상인이 공단 급식업체를 중심으로 수입쌀을 공급하는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중간 상인들만 취급하는 대형 공매업체에서는 중간상인 이후의 실제 유통과정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수입쌀 취급업체 관계자들은 "원재료 부담을 줄이려 수입쌀을 즐겨 찾는 음식점들이 많아졌지만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아직 시행안돼 어떤 음식점도 수입쌀로 밥을 지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라며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공단 급식업체에서도 수입쌀을 써 급식단가를 낮추지만 아무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드물지만 일반인들이 스스로 수입쌀을 찾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 지난 16일 대구 달서구 한 주택가에 위치한 양곡업체. 칼로스쌀 3만 3천원(20kg 기준), 안계쌀 4만 4천원, 햅쌀 3만 9천 원 등 수입쌀과 국산쌀의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중국산쌀과 미국산쌀 칼로스를 각각 26t씩 들여왔다."며 "중국산쌀은 이미 지난 달에 모두 팔렸고 칼로스는 1t도 채 남지 않았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 업체의 수입산쌀을 많이 사간 곳은 단연 음식점들이지만 영세민들이 구매한 물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보관상태가 좋은 수입쌀을 국산 묵은 쌀과 비교하면 맛이 오히려 낫고, 한 푼이 아쉬운 영세민들에게는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수입쌀이 환영받고 있다는 것. 수입쌀 소량을 판매한 서문시장 한 도매업체도 "음식점을 제외한 물량은 영세민들이 가져갔다."고 밝혔다.

◆대책을 세우자

대구·경북을 비롯, 전국 농민들은 수입쌀 자체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수입쌀을 국산쌀로 잘못 알고 먹는 현재의 유통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수입쌀 부정 유통을 막고 음식점이나 급식업체에서도 수입쌀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지난 8월 22일 '쌀 원산지 표시제'가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했다. 시행 예정일을 2008년 1월 1일로 잡고 있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국내에서 조리·판매하는 모든 쌀들에 대해 원산지 및 종류 표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원산지 표시의 허위 및 과장 광고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과 영업허가 취소 등의 강한 행정처분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중앙 본부는 최근 "모든 농업인들과 농민단체가 식품위생법 개정안의 10월 정기국회 통과를 강력 촉구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다른 움직임은 양곡관리법 개정. 현행 양곡관리법은 국산과 수입쌀 혼합 비율을 포장지에 허위로 기재하지 못하도록만 규정할 뿐 별다른 처벌조항이 없다. 대구·경북에서 수입쌀 시판 이후 지금까지 모두 5건의 부정유통 사례가 단속됐지만 구속 수사는 단 2건에 그쳤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촌출신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수입쌀을 국산 포장지에 거짓으로 담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과 함께 '동네쌀집들'의 수입쌀 공매 참여 철회를 담고 있다. 정부가 자본금 50억 원 이상의 공매참여 자격을 없애면서 너도나도 수입쌀 시장에 가세, 유통구조가 불투명한 영세쌀 가게들 중심으로 부정유통이 잇따른다는 것.

하지만 농림부 및 농수산물유통공사측은"수입쌀과 국산쌀 거짓혼합에 대한 법적 기준은 현행법만으로도 충분하다."며"수입쌀 공매참여 조건을 원래대로 강화하면 아예 수입쌀을 팔지 말라는 것이나 같다."며 반대입장을 밝혀 실제 법 개정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