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일이다. 한 대권 주자에 대해 오피니언리더 집단과 일반대중의 지지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드문 현상이다. 손학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치부 기자들을 조사하면 대통령감은 단연 손학규다. 다른 대권주자들은 게임이 안 될 정도다. 여의도 사정에 밝은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보고 물어도 다르지 않다. 손학규가 1위다. 말하자면 대권주자들을 근접 거리에서 관찰할 기회가 많은 사람들한테는 손학규만한 인물이 없다. 얼마 전 전국 중소기업인 설문에서도 1위로 꼽혔다. 현 여권조차 한나라당 내에서 가장 벅찬 경쟁 후보로 친다고 한다. 여권 진영의 진보적 성향까지 아우르고 있어 선명한 공격거리를 찾기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권주자들의 물밑경쟁을 몇 단계 건너 관전하는 일반대중으로 가면 사정이 확 달라진다. 그는 항상 꼴찌다. 그냥 꼴찌도 아니고 20%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이명박 박근혜 고건에 한참 뒤처진 4%대다. 이마저도 '민심대장정' 이후 일이지 그 전까지는 2%도 못 미치는 존재감이었다.
그가 나선 길이 어느새 막바지에 와 있다. 경기지사 퇴임식을 마치자마자 배낭을 멘 대장정이 오늘로 84일째고 다음달 7일이면 100일을 채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물난리산골 지하탄광 쓰레기장 고깃배 농촌들판 중소공장 공사판을 찾아가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경북에서는 지난 18일부터 군위 구미 영천 포항 경주를 도는 중이다. 푹푹 쪘던 지난 8월 초도 울진 안동 영주 상주 김천 성주를 다녀갔었다. 그는 '하늘이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땀을 쏟고, 보고 듣는 고단한 삶을 낱낱이 기록한다고 한다. 언론에 비치는 행색은 생판 딴 모습이다. 새카맣게 타고 수염이 뒤덮어 노숙자가 따로 없다. 내일모레가 환갑인 나이에 쉽지 않을 '고난의 행군'이다.
그는 '몸의 정치'를 실험 중이다. 대학생들이 농활로, 운동권 젊은이들이 위장취업으로, 책상머리의 허상을 깨치기 위해 삶의 현장에 뛰어들던, 마치 그런 몸짓이다. 대장정의 원조(마오쩌둥)를 답습하는지, 같이 먹고 자고 울고 웃으며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잘 짜인 스케줄에 입각해 악수치레로 지나는 민심 탐방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입으로 하는 정치와는 민심의 체온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고 밑바닥 체험에 나설 수 없는 노릇이다. 손학규는 자연스럽다. 그 또한 사서 하는 노동이지만, 가는 곳마다 몸에 밴 솜씨가 제법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위주의가 젊음을 짓누르던 시절 광부로 용접공으로 떠돈 체취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대충 돕는 시늉하며 사진이나 찍고 말겠지 하던 시선들이 칭찬릴레이로 바뀌는 모양이다. 대장정을 카운트다운하는 사람들이 늘고, 인터넷에는 응원의 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 사이 '쇼하고 있네' '끝까지 갈까' '지지율 이벤트' 따위의 빈정거림이 쏙 들어갔다. 굳이 따져들면 모든 정치적 행위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다만 도모하는 내용에 따라 민심의 투영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도 어떤 쇼가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경우 여러 의미 부여가 따르게 마련이다. 연출 캐릭터와 실제 이미지를 동일시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나아가서, 쇼가 주인공이 살아온 역정과 닿아 있다면 감동은 배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민심대장정을 '손학규의 진정성'이라 여기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어찌 보면 손학규의 발길은 이 시대 정치의 본분을 캐묻고 있다. 우리 정치가 오로지 이기고 지는 工學的(공학적) 게임에만 몰두하는 데 대한 고민과 반성이다. 그러한 몸짓은 의도했든 안 했든, 국민과 따로 도는 여의도에 자기점검의 불씨를 던졌다. 민심 체험을 나서는 국회의원이 하나둘 생겨났다. 국민에게는 새삼 정치지도자의 덕목을 곰곰 살펴보게 만드는 계기를 주었다.
좋은 정치는 올바른 민심 독해에서 비롯한다. 그 점에서 온몸으로 밑바닥 민심을 읽은 손학규는 많은 것을 벌었다. 이제 손질을 거치는 '보고서 정치'를 뛰어 넘는 '몸의 정치'의 진수를 보여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김성규 논설위원 woosa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