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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내 마음 속의 '돈 키호테'

저돌적인 행동가를 지칭하는 '돈키호테형'과 우유부단한 사색가를 일컫는 '햄릿형'이라는 인물유형은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두 작품을 분석하면서 처음 시도한 분류에서 유래되었다.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이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진한다. 그는 언제나 이웃을 위해 살며 악을 근절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희생의 화신이다. 반면에 부왕의 독살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방황과 고통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햄릿은 에고이즘의 화신이다. 그는 항상 주저하며 쉽게 용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고 감시하며, 내부를 주시함으로써 만족을 얻는다.

두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돈키호테형은 단조로운 사상과 편협함이 문제될 수 있고, 햄릿형은 뛰어난 감성과 통찰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실천력이 결여되기가 쉽다. 두 인물형은 각각 분명한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만으로는 이상형이 될 수 없다. 두 인물형이 변증법적 지양의 과정을 거쳐 제 삼의 인물로 통합될 때 이상적인 인간형이 창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물은 현실 세계에서는 나오기가 어렵다. 투르게네프는 '햄릿형'보다 '돈키호테형' 인간이 이상과 목표를 향해 주저하지 않고 나아가기 때문에 역사 발전에 능동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햄릿형을 성숙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힘을 얻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떤 조직 속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고 나면 창의력과 경험을 활용하여 무엇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시도하기보다는 뒷전에 물러앉아 관망하거나 관조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권장 받는다. 변화와 혁신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런 태도는 자신을 퇴보시키고 조직의 정체에 일조하는 무책임한 처신일 수도 있다. 꼭 발언해야 할 사람들이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며 몸을 사린다면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세몰이를 하며 그 조직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언제나 꿈을 꾸며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인물이다. 그는 거듭된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선다. 그의 유머와 덤벙거림에는 위선에 대한 풍자와 고통 받는 민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겸허한 마음과 진정한 용기, 낙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추태귀 상주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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