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사유람단의 밥상 경제학/현의송 지음/ 이가서출판사 펴냄
우리 농업과 농촌이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환자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돈벌이가 될 만한 농작물이 별로 없고, 외국에서 값싸게 들어온 농산물이 우리 농민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UR)·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이 농민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러한 때에 농민신문사 사장을 지낸 현의송 씨가 일본의 농촌 구석구석을 취재해 발간한 이 책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일본같은 부자 나라에서도 농민들은 세계 제일의 농사 전문가가 되겠다고 벼르고, 소비자들은 공동체를 구성해 농민들과 협력하며, 도시의 정년퇴직 근로자들은 귀농을 하겠다고 줄을 서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의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의 실상을 그저 묵묵히 보여줄 뿐, 우리 농업이 어렵다거나 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 책을 냈다는 그 자체가 우리 농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에 농업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이 아닌가.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농업문제 전문가이다. 곡창지대인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서울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쳐 최고 경영자인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까지 역임했다.
그런 그가 정년 퇴직을 하고 지난해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 슈도(修道)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1년 동안 일본 농업에 대해 공부를 하고 낸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 농촌의 구석구석을 발로 뛰어서 얻은 결실이다.
사무실이나 연구실에 앉아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직접 농민을 만나 인터뷰하고 현장을 확인한 보고서인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역시 일본 농민과 농장에 관한 것이다.
일본의 농업은 여러 부분에서 한국 농업과 닮았다. 하지만 똑같이 개방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으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은 크게 다르다. 농민은 전문가를 지향하고, 농장은 다양한 이벤트로 도시민을 불러들이며, 영농은 집단화하고 있다.
지역 활성화를 위한 주민들의 노력도 본받을 만하다. 이는 주민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자체의 기능과 리더의 역할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오래전 일본 농업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 그린투어리즘 사례들은 우리 농촌의 관광자원 개발에도 참고가 될 것이다.
노인이나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사례도 재미있다. 일본은 세계 최장수 국가로 노인 복지가 중요한 국가 시책의 하나인데,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어떤 복지 정책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또 여성이 일자리를 가지면서 자신을 계발하고 가계를 일으키는 사례들은 여성이 개인과 가정을 넘어 지역 발전에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농협이 펼치고 있는 영농지도사업에 관한 내용들은 우리나라 농협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듯하다.
일본의 농업과 농촌에 대해 이 책 만큼 현장을 충실하게 담은 책도 드물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농업정책 입안자들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집행자들 그리고 현장의 농민과 관계기관 모두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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