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 발언 파문과 관련해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수석부장판사가 후배 판사들에게 "법관은 검사·변호사와 동료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이메일을 보내 반성을 촉구하고 검찰·변호사를 강도 높게 비판해 눈길을 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국내 법관 2천여명 중 14% 안팎인 280여명의 판사가 근무하고, 대형 사건 1심 재판의 대부분이 처리되며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맡는 형사수석부장은 형사재판부를 총괄하는 자리여서 이번 이메일은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상훈(50·사시 19회) 형사수석부장판사는 22일 형사부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대법원장이 법관과 법원 직원을 상대로 말씀하신 것을 갖고 외부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부터가 옳은 일이 아니고, 검찰이나 변호사단체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의 상대방은 피의자나 피고인이다. 어찌 법원, 법관이 검찰의 상대방인가. 변호사는 당사자의 대리인이거나 변호인일 뿐이다. 주된 활동무대 중 하나가 법원일 따름이다. 법조 3륜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사라졌어야 한다. 전혀 다른 직역(職域)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달갑지 않은 동료의식을 내세우는 표현 같아서 유쾌하지 않다"며 불편했던 속내를 들어냈다.
그는 "부장검사로 일하다가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피고인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구속한다고 위협해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할 수 밖에 없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한다. 다 믿을 수는 없겠으나 부장검사였던 사람까지 그런 주장을 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며 검찰 쪽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공개되지 않고 변호인이 참여하지 않은 조사실에서의 조사를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공개된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측의 열띤, 생생한 공방을 기초로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검사는 수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공판정에서 (유죄) 입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잘할 때까지 요구해야 한다. 못하면 상응한 판결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는 변호사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질타했다.
그는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자기의 할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러면 당사자의 신뢰를 받는다. 판사를 그만두면 변호사로 일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의식을 가질 이유는 없다. 판사는 변호사와 같은 배를 탄 동지가 아니다. 물론 적도 아니지만, 각각 역할이 전혀 다른 직역에 종사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전관예우'이다. 변호사의 유능함은 해박한 법률지식과 열성적인 변호이지 법관과의 친분이 아니다. '판사와 친하니까 나를 선임하라'는 변호사가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전히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조서를 '꾸민다'고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아니라 '산다'고 한다. 이것이 국민들의 의식이고, 그런 의식을 갖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조서를 진술한 그대로 작성해 준다면 어찌 꾸민다고 할 것이며, 전심전력으로 나를 도와준 변호사를 왜 산다고 하는 것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법관은 스스로 오해받을 만한 재판을 해왔는지 항상 반성해야 한다. 다른 사람 탓할 일이 아니다. 재판 잘 하면 된다. 검사, 변호사에게는 맡은 일을 잘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법관도 재판 잘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며 내부 자성을 촉구하며 글을 끝맺었다.
회사법 박사인 이 부장판사는 서울고법 형사5부 재직시 '삼성 에버랜드' 항소심에서 검찰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며 혐의 입증을 촉구하는 석명권을 행사해 주목받았으며 대법원은 그의 공판중심주의 전문 능력을 인정해 지난달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전보 발령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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