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자주성과 독립성 및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하여 1952년에 시·군 단위 교육 자치 제도를 실시한 이후 이 제도가 여러 번 바뀌었다. 1991년 3월 26일에 시·도 단위 합의제 집행기관인 교육위원회를 집행기관인 교육청과 의결 기관인 교육위원회로 분리하고, 교육위원은 군·구의회에서 2명씩 추천하여 시·도 의회에서 2명 중 1명을 선출하게 되었다. 대구광역시 교육위원은 7명이 되었고, 여기서 교육감을 선출하였는데 나는 1993년 6월 28일에 제 4대 대구광역시 교육감이면서 첫 민선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거슬러 올라가 1965년, 영신고등학교 교감 때부터 교육감으로 재직할 때까지 일관되게 교육계획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실행에 적극 노력했다.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가 교육계획을 바로 세워야 교육의 방향이 바로 잡히고 좋은 성과를 거둘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같지 않아 교육계획 수립에도 관심이 적을 뿐 아니라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교육계획대로 실행하지 않고 임의로 교육을 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최초로 관심을 가졌던 분이 김판영 경북 초대 교육감이었다. 그분은 향토학교 건설 등 경북교육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그 중에서도 학교 교육계획 수립과 그 평가에 큰 관심을 가졌다. 교육이란 인간의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키는 기능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 기능은 주로 학교라는 조직체 안에서 운영되고 있으므로 학교는 당연히 교육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교육계획은 먼저 학교 교육목표를 설정한 후에 이 목표 달성을 위한 교육 활동 내용을 설정해야 한다. 학교 교육목표는 학교 교육활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본이 되며 근간적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학교 교육의 모든 결정을 지배한다. 1960년대는 이러한 교육원리의 선행 연구 자료도 없었고 실시한 학교도 없었다. 다만 경북대학교 논문집 제6집, 제8집에 개념만 약간 언급되어 있었고, 교육총서에서도 교육과정에서 그 개념만 다루었을 뿐이다.
이때 경북고등학교 교장실에서 시내 고등학교의 학교 교육계획 수립에 대한 보고회가 있었다. 모든 학교가 교육감에게 밤늦게까지 보고를 했는데 나는 교장을 대리하여 참석했다. 교육감님께서 나의 브리핑을 다 들으신 후 교육계획의 개념이라도 아는 학교는 영신고등학교 밖에 없다면서 빠른 시일 안에 영신고 김연철 교감이 도내 교장에게 연수를 하도록 하라고 옆에 앉아 있는 학무국장에게 지시하신다. 그 후 내가 작성한 학교경영의 근대화(1), 학교 교육계획 수립과 평가, 학습자료 활용 방법 등을 교육위원회에서 장학자료로 도내 초·중·고등학교에 배부했다. 지금 생각하면 쑥스럽기도 하지만 교육 계획에 대한 신념은 그때 싹이 텄던 것 같다.
여기에서 꼭 한 가지를 소개하고 싶은 것은 '수업시수 확보를 위한 요일별 행사 배정표'다. 장학직에 있을 때 만들었는데 특정 요일에 치중되는 학교 행사가 그 요일의 교과목을 희생시키는 것을 예방하여 전 교과가 똑같이 시수를 확보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장학지도 때는 이 표에 의하여 수업 시수 확보를 꼭 확인하게 했는데 이것은 내가 창안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대구에서만 사용하여 대구의 학력을 높이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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