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작가 조두진, 신작소설 '능소화' 펴내

'당신은 언제나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다가 함께 죽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먼저 가십니까.... 함께 누우면 제가 언제나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이 서러운 마음을 어찌할까요. 이제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할까요.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날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합니다.... 어떤 운명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함께 죽어 몸이 썩더라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지요. 그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1998년 4월 택지개발이 한창이던 안동시 정상동 산기슭에서 비석도 없는 무덤이 발견됐다. 특이하게도 사방이 덩굴나무로 둘러싸인 이 무덤에서는 400여년 전에 죽은 사람의 미라와 가족들이 써 놓은 편지가 나왔다.

무덤은 조선 명종 때 사람 이응태의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관에서 나온 다른 사람들의 글은 모두 심하게 상했지만, 죽은 이의 아내가 쓴 글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원이 아버지께'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 편지의 내용은 남편을 잃은 안타까운 심정과 앞으로 살아갈 막막한 세월에 대한 것이었다.

400년 만에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 그 끝나지 않은 사랑이 소설 '능소화'로 피어났다. 장편 '도모유키'로 2005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 조두진(40.매일신문 기자)이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400년 전 조선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견고하게 풀어놓았다.

소설 '능소화'는 능소화 곱게 피던 날 만나 능소화 만발한 여름날 이별한 응태와 그의 아내 여늬의 서럽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이다. 400년 시공을 뛰어넘는 무한지애(無限至愛)가 인스턴트 문화에 오염된 채 참된 사랑의 부재 속에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400년 전 한 장의 편지에 아로새겨진 불멸의 사랑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더욱 생생하게 복원된다. 소설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가져갔다가 일본의 한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원이 엄마의 편지와 일기가 추가로 입수하면서 응태와 여늬의 애틋한 삶을 되살린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남편을 잃고 아들 '원이'마저 보내야 했던 여늬의 일기는 그래서 계속된다. '함께 있어도 그리워했는데, 당신이 가고 없는 지금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둘이 천렵하던 반변천은 여전히 소리내어 흐르지만 냇가를 메우던 웃음소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봄입니다. 삼라만상에 꽃 비단이 펼쳐졌지만, 안채 마당에는 눈바람이 흩날립니다' '세월이 부질없이 오고갔지만, 남편과 자식 잃은 슬픔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소설 '능소화'를 탈고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슬픔도 세월 앞에서는 밋밋해지는 법이지만, 죽어서도 잊거나 이기지 못할 슬픔이 있음을 압니다. 시들지 않고 떨어지는 처연한 아름다움, 능소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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