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대구 달구벌종합스포츠센터 수영장에서 열린 '2006 한국 스페셜 올림픽' 영남지역 예선대회. 길병규(18) 군이 또래들과 함께 시원스레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병규야, 이번엔 100m야. 갔다가 돌아와야 해." 어머니 김경희(46) 씨의 거듭된 다짐을 들으며 병규는 수영장 레인을 돌고 또 돌았다.
"그래,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김 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 밖으로 나오는 병규의 등을 토닥였다. 병규는 이날 대회에서 청소년부 평영 50m와 100m에서 우승, 금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쏟아질 것 같은 맑은 눈빛을 가진 병규는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가족들이 병규의 상태를 알게 된 건 태어난 지 18개월이 지나서.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장난감에 반응을 안하더라구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것은 어머니 김 씨의 끈질긴 집념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산만하고 고집스러웠던 병규를 위해 김 씨가 선택한 것은 '수영'. 병규는 다섯살 난 해부터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수영을 통해 에너지를 무한정 발산시켰다. 수영을 배우며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해야만 하는 행동'을 서서히 구분해 나갔다. 수영장에서 소변을 보거나 소리를 지르던 병규는 지속적인 반복훈련을 통해 여느 또래 아이 못지 않게 자랐다.
병규는 영법(泳法)이 어려워 정신지체장애인들이 가장 힘들어 한다는 평영 부문에서 탁월한 실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 8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렸던 국제 스페셜 올림픽 동아시아 대회 평영 50m에서 44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5 한국 스페셜 올림픽에선 평영과 접영부문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고 지난해에는 대구시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차별과 진로 문제는 넘기 힘든 현실의 벽이다. 일반계 고교의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병규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결국 병규는 또래에 비해 2년이나 늦게 대구자연과학고 1학년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병규를 대학에 보낼 자신이 없어요. 받아주는 대학이나 실업팀도 없고 수영을 위한 개인 레슨비도 만만치 않거든요." 김 씨는 병규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던 수영이 아이의 전부가 돼 버렸지만 꿈을 키워나갈 길이 막막하다."며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맘껏 운동하고 재량껏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답해 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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