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보고 가슴으로 울었어요"…교도사목후원회 봉사자들

"1998년 1월4일, 이미 6일 전에 사형집행 된 사형수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늘에서 보낸 편지.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어요. 그 때가 생각나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사형수 이야기로 관객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박광훈 신부와 교도사목후원회 봉사자들은 이 영화를 보고 가슴으로 울었다. 한 달에 한번 사형수들을 만나는 이들에겐 영화 속 사형수 윤수(강동원 분)는 지금 화원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화 속 모니카 수녀(윤여정 분)처럼 사형수들을 만나 미사도 보고 이야기도 하는 봉사자들이다. 화원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는 총 8명, 이 가운데 이들이 만나는 가톨릭 신자는 3명이다.

12년째 봉사중인 서숙이(53·대구 달서구 월성동)씨는 영화를 보고 1997년 12월30일 사형집행된 영락(가명)이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천사같이 착한 얼굴의 그가 죽기 바로 전날 썼던 마지막 편지는 '건강해서 오래오래 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서씨의 가슴에 아직 말뚝 처럼 꼭 박혀 있다. 지금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마지막 편지, 꼭 서씨가 사형을 집행한 것 처럼 죄책감마저 든다.

30여년간 교도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경숙(65·대구 달서구 대곡동)씨도 10년 전 사형집행은 악몽으로 남아있다. "오전 7시쯤 수녀님이 같이 갈 데가 있다고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아무 것도 모르고 서둘러 나왔는데, 모두들 촛불을 켜고 기도 하고 있었어요. 몇 년 동안 정이 쌓였던 이 자식같던 사람들을 보내고 나니 그 충격이 얼마나 오래가던지, 한동안 교도소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어요."

1997년 사형집행 후 10년째 사형집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느때인지 모르는 사형은 사형수들에겐 형벌이나 마찬가지. 서씨는 "1997년 집행당했던 영락이는, 밤에 누울땐 안도감이 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한게, 사는게 구차하다고 하더군요."라고 전했다. 이들에게 사형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직접 만나는 사형수는 무섭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불안해하고 시선둘 곳 모르는 그들이 한없이 애처롭다고. 시간이 지나, 이제 속죄하고 맑아진 그들의 모습은 마치 천사같단다. "너무 미남이고 맑고 착해요." 이씨는 칭찬에 침이 마를 정도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 사형수와의 만남에 온갖 정성을 쏟는다. "제일 처음 나오는 귀한 과일이며 사탕이며, 그들에게 먹일 음식을 마련할 때면 앉았다 섰다 고르고 또 고릅니다. 자식들한테도 안사주는 것들이라,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해못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더 이해해주죠." 오춘화(55·대구 달서구 월성동)씨가 그동안 고이 숨겨놨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만남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이씨는 대전에 사는 경수(가명)의 노모가 면회를 오면 집으로 모셔다 극진히 대접하고 서씨는 조선족인 인철(가명)의 어머니와 수시로 통화하며 울고 웃는다. 일 년에 한번, 1997년 세상을 떠난 사형수들의 묘지에 꽃을 들고 찾는다.

사형수들을 직접 몸으로 부대끼는 이들이기에 교도사목후원회 봉사자들은 사형폐지론자들이다. 박 신부는 "그들과 나의 다른 점은 딱 3초 차이입니다. 나는 3초를 참았고, 그들은 참지 못했죠. 범죄를 저지를 당시 그 사람과 지금의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예요. 죽여버린다고 끝나지 않는 만큼 사형 대신 절대 종신형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전 발생한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같은 강력 범죄가 일어날 때 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저런 사람들도 살려야 하냐고 말이다. "죽을 만큼 나쁜 짓을 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사람에게도 속죄할 기회는 줘야죠. 어쩌면 범죄의 배경엔 사회구조적 문제도 있는데, 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 목숨을 빼앗는 것이 힘있는 자의 폭행이 아닐까요."서씨의 말이다.

사형수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한없이 소박하다. 가로 막는 창살 없는 곳에서 어머니의 손만 이라도 직접 잡아보는 것. 경수(가명)는 어머니와의 특별접견 30분 내내 말없이 어머니의 어깨만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엄마와 함께 하룻밤 자고 싶다'는 그들의 소원은 '살고싶다'는 말보다 애절하다.

"우리는 직접 몸으로 느끼기 때문에 사형제가 폐지돼야 한다는 것을 확신해요. 생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잖아요."

사형수들의 엄마이자 누나인 그들은 바로 영화 속 유정이자 모니카 수녀였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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