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생생 여행체험] 필리핀인 팀의 고창 메밀꽃밭 여행

한국에 온 지 불과 3주. 필리핀 폴리테크닉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의 영진전문대학으로 유학을 온 팀 라나(22.컴퓨터 정보계열 전공) 씨. 한국에서 적응하기도 바쁜 시기에 첫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매일신문사 주말취재팀 초청으로 대구여행자클럽(www.tour1144.com)과 함께 한 고창 학원농장 메밀꽃밭 여행.

대구에서 4시간가량 소요되는 먼 길이라 가는 동안 부족한 아침잠을 보충하기도 하고 깨어있는 동안엔 주변 경관을 유심히 살피기도 한다. 필리핀과 다른 낯선 곳의 시골 풍경이 이채롭기만 했던 것. 오전 11시30분쯤 도착한 곳은 선운사. 고즈넉한 절 풍경이 한국적인 가을 경치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팀은 "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다. 절 내에 각기 다른 부처상, 오백나한상, 사천왕상 등 처음보는 한국의 불교문화도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을 반짝이게 했다. 그는 "청명한 가을하늘과 조용한 선사, 화려한 주변 꽃들이 어우러져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맑고 가볍게 해준다."고 했다.

선운사 주변을 둘러본 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산채비빔밥. 팀은 한국의 대표적 음식인 비빔밥을 처음 맛봤다. 서투르지만 숟가락, 젓가락을 모두 이용해 밥과 나물을 비벼 맛있게 먹는다. 그는 "비빔밥은 신선한 웰빙음식"이라며 "앞으로 자주 먹을 것"이라고 했다. 반주로 곁들인 고창의 명물 복분자주. 값비싼 술이라 많이 먹진 못하고 두 잔씩 마셨다. 정력에 좋은 술이라 부추기자 "갑자기 힘이 불끈불끈 솟는 것 같다."고 웃었다.

점심 후 도착한 곳은 20만 평에 이르는 메밀꽃밭인 고창 학원농장. 팀은 마치 그림 속 풍경에 빠져든 듯 했다. 메밀꽃밭에서 배영, 접영 등 헤엄치는 동작을 해보이며 양손을 활짝 펼치고 한바퀴 돌기도 했다. 메밀꽃 사이사이에 핀 해바라기도 그를 갑절로 기쁘게 했다.

그는 "필리핀에 있는 할머니, 미국에 있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며 "어릴 때 꽃밭 언덕에서 뛰노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며 좋아했다. 또 "지금이라도 할머니, 어머니를 이곳으로 부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곳 저곳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가 터진다. 팀 역시 메밀꽃밭 속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정신없다. 거의 모든 관광객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사진찍는 모습도 필리핀에선 보기드문 장면. 그는 "누구에게 부탁해도 사진을 잘 찍어주고 즐겁게 사진찍는 문화가 부럽다."며 "하지만 자연을 감상하기 보다 사진찍는데 너무 열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 온 김에 농장 먹거리촌에서 메밀묵과 함께 동동주를 한잔 마셨다. 그야말로 한국의 토속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메밀묵이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하자 젓가락으로 푹 찍어서 먹은 뒤 동동주를 쭉 들이키고는 "캬~"하며 입술을 훔친다. 그 모습만으로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그는 "기분이 너무 좋다."며 "메밀꽃밭에서의 기억은 마치 천국여행과 같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이곳 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 씨의 부인 이 학 여사가 40여년 전 이곳 야산을 개간해 설립했다. 봄, 여름에는 청보리밭으로 가을에는 메밀꽃밭으로 유명한 곳. 팀은 "필리핀에도 광활하게 버려진 땅이 많지만 아무도 꽃농장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며 "고창 학원농장을 견학한 뒤 벤치마킹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 역시 4시간. 버스에서 그는 "우연찮게 가게 된 여행인데 너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3년동안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한국의 유명한 관광지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고 밝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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