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양교의 '괴물'(?)…"아직 그대로네"

조형물·아치형 인도 '흉물化'…"수준 절감한다"

대구 동구의 아양교. 이 다리는 최근 3년동안 수십억 원을 잡아먹었다. 다리를 새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다리치장을 하는데만 수십억 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다리는 아직 돈을 더 먹어야 한다. 추가적인 용역작업과 공사를 위해 수천만 원이 더 들어갈 예정.

겉치례에만 신경 써 보행편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돈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대구시민들은 아양교를 보면서 대구 공무원들의 '수준'을 절감하고 있다.

3년여 전인 2003년 초. 대구 동구청은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앞두고 지역의 관문 다리인 아양교를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03년 8월 총사업비 15억 원을 들여 아양교 인도에 아치형 오르막 길을 설치하고 아양교 입구엔 팔공산 능선을 형상화한 높이 20m의 알루미늄 조형물을 세웠다.

그러나 완공 이후 비난이 빗발쳤다. 아치형 오르막길에서 보행자들이 미끄러지는 일이 잦은 데다 장애인들과 노약자들의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온 것. 팔공산 능선을 형상화한 다리 입구의 대형 조형물도 '생뚱맞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4년 "오르막 보도를 철거하거나 시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구청은 부랴부랴 2004년 노약자와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도록 기존 차로를 줄인 뒤 이 곳에 평평한 보도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이 공사를 위해 동구청은 6천5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했고, 지역 한 업체와 지난 해 5월 3천800만 원에 설계 계약까지 마쳤다.

당시 동구청은 다리 위 차로 폭(26m)이 연결 도로의 차로 폭(25m)보다 넓어 차량 통행에 문제가 없고 '인도를 철거하는 비용'(1억 3천만 원)보다 '보행 전용 통로를 만드는 비용'(6천500만 원)이 훨씬 저렴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아치형 보도는 1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예전모습 그대로고 차로축소 공사도 시행되지 않았다. 차로 폭을 축소할 경우 이륜차 등과 접촉사고가 날 위험이 커지는데다 시민단체와 인근 주민들이 "가뜩이나 교통 정체가 심해 차로를 늘려도 시원찮은 판에 축소가 왠 말이냐."며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 동구청은 지난 7월까지 공사를 끝내주겠다고 시민단체에 공문까지 보내며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못했다. .

동구청 관계자는 "차로를 줄여 보도를 만드는 계획안은 사실 궁여지책이었다."며 "'행정실패'를 모면하기 위해 차로를 줄이려 했는데 시민들의 비판이 너무 날카로워 결국 이마저 포기하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구청은 최근 차로축소 계획을 철회하고 다시 여론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결국 실시설계 계약취소에 따른 업체의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고 여론 조사 비용까지 추가로 들어가게 된 셈이 됐다. 한치 앞도 못보고 반쪽짜리 다리를 만든 행정 당국과 오락가락하는 개선 대책에 혈세는 허공에 날아갔고, 이 곳을 지나는 노약자와 장애인 등 주민들만 수년째 골탕을 먹고 있는 셈이다.

지난 7월 취임, '아양교 문제'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던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독립적인 여론조사수렴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 용역 기관에 의뢰, 다시 주민들의 민의를 수렴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라며 "아양교 문제는 행정기관의 사려깊지 못한 판단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사건"이라 지적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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