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연주자·제작자·믹싱 전문가 등 모두에게 레퍼런스(Reference)가 될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승철의 8집 '리플렉션 오브 사운드(Reflection of sound)'는 철저히 기획된 음반이다. '불황인 가요계, 등 돌린 팬들'. 이승철은 '이유가 뭘까' 원초적인 고민부터 시작했다. '천편일률적인 트렌디한 음악, 저예산 음악이 판치는 환경'. 그는 가요계가 수준 높은 음악 팬들을 충족시킬 노래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8집 작업에 착수했다.
25일 저녁 이승철이 운영하는 서울 삼성동 루이 스튜디오. 블라우스 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이승철이 반겼다. "음악부터 들어보자"며 8집 수록곡을 하나씩 꺼내보인다. 신인 작곡가 홍진영이 쓴 타이틀곡 '소리쳐', 이현승이 작곡한 '하얀새', 전해성의 '우리'까지.
그는 매번 음반을 낼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는 듯하다.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 네 악기가 만들어낸 소리는 어쿠스틱하다. 노래 중간에 여유를 주고, 말미에 페이드 아웃되는 기타와 피아노 솔로는 대중음악의 가벼움을 씼어낸다. 악기 소스들이 청각 세포를 부드럽게 간지럽힌다. 음반 제목이 왜 '소리의 반사'인지 가늠케 한다. 알토란 같은 곡들로 채워 버릴 게 하나 없다.
◇좋은 음반 생산, 가요계 부활 관건
"요즘 가요계, 어렵죠. 가요 팬들이 등 돌린 이유가 뭘까 고민했어요. 들을 음악이 없다는 것이었죠. 이를 해소하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대중음악계 레퍼런스가 될 수준 높은 음반을 만들 제 역량부터 점검했습니다."
이승철에겐 음악적 역량, 좋은 곡, 실력 있는 세션, 최고 수준의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다. 또 마이클 잭슨, 스팅, 프린스 등의 음반 믹싱을 담당한 인물로 2002년 재닛 잭슨의 음반을 믹싱해 그래미상을 수상한 스티브 하치가 전곡의 믹싱을 담당했다. 마스터링 역시 미국의 브라이언 가드너가 맡았다.
이승철은 "평범한 오케스트라 스트링이 아닌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 연주에 맞춰 노래해 언플러그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며 "내 녹음실을 직접 찾아 작업한 스티브 하치의 손에서 악기 소스들이 살아났다. '하얀새'를 우리의 손으로 믹싱했다면 이런 고급스런 소리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비 원더, 스팅의 음악에서처럼 하모니카 소리까지 다 들린다"고 자랑했다.
1천만 관객 시장인 영화계와 달리 10만~20만장 음반 판매에도 허덕이는 가요계. 그는 상반된 처지에 놓은 두 업계에 대한 비교도 언급했다.
"1990년대만 해도 활황기였던 가요계와 달리 당시 영화계는 할리우드에 밀렸죠. 하지만 지금 우리 영화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 음악도 절대 세계 수준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제작자들이 눈앞의 장삿속으로 트렌디한 노래를 다량 공급하며 음악 팬들의 수요가 급감했어요. 음악이 아닌 다른 데 돈을 다 썼죠. 좋은 음반이 많이 나와야 해요. 중견 가수들의 음악은 그래도 괜찮아요. 신인들은 어떡해요. 우린 늙어가는 데 정신차려야 합니다. 문화 삼류국이 되지 않으려면요."
그의 말을 입증하듯 요즘 가요계에는 온라인, 모바일에서 '돈이 되는' 발라드곡이 판친다.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은 대중이 찾으면 너도나도 따라간다"고 걱정한 그는 "대중이 찾기 전에 음악이 먼저 가야 한다. 지금은 대중의 수준보다 밑에 있다는 증거"라고 일침을 놓았다.
◇신인 작곡가와의 작업, 새로움 불어넣어
그러나 음악성만이 대중의 귀를 즐겁게 할 순 없다. 음악 팬의 마음을 사로잡을 대중성과의 결합이 관건. 이승철은 신인, 유명 작곡가를 막론하고 좋은 노래를 수집하는 데 힘을 쏟았다. 편견을 버리기 위해 작곡자의 이름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노래로만 평가했다. 이승철은 전해성 등 당시 신인들과 작업해 이들을 히트 작곡가로 성장시키는 걸로 유명하다.
'소리쳐' 역시 처음 음반에 곡을 싣는 신인 홍진영의 작품. 홍진영은 이 노래를 20군데도 넘는 음반기획사에 들려줬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의 데모 곡은 피아노, 드럼 사운드에 본인이 직접 노래해 초라했지만 이승철은 단조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34살인 그는 '소리쳐'를 이승철의 타이틀곡으로 수록한다는 소식에 월세방에서 아내와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신인 작곡가와의 만남, 제가 가진 진부하고 뻔하고 느끼한 음악을 모두 커버해주죠. 매일 삼겹살을 먹는데 완전히 다른 요리로도 먹을 수 있잖아요. 누구나 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랑,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듯이요. 가수들은 음반을 낼 때마다 새로운 창법을 구사해 변화를 줬다고 합니다. 바보 같은 생각이죠. 전 절대 안 바뀝니다. 단지 신선한 노래를 통해 변화를 느끼도록 하죠."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역량을 갖췄음에도 작곡가들의 노래를 받는 이유도 궁금했다.
"가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만 안하면 되요. 주위 프로듀서, 스태프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좋은 음악의 기준은 가수가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음악 팬과 평론가의 몫이죠."
팬층의 폭을 넓히며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이승철의 노력은 8집 밖에서도 계속된다. MBC TV 드라마 '불새' 주제곡 '인연'에 이어 일본 TBS 드라마 '윤무곡-론도'의 주제곡 '사요나라³'를 불러 인기를 끈 그는 배용준 주연의 MBC TV 드라마 '태왕사신기' 주제곡을 부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의 음악을 만든 세계적인 일본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노래에 국내 작사가가 노랫말을 붙인다. 이승철은 한국어에 이어 일본어, 중국어로도 노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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