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꿈 나의 삶, 김연철] (11)집단 장학지도

1972년 10월 하순경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 교육위원회에서 내일 영신고등학교에 장학지도 차 방문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평소 우리 학교는 오늘 일을 내일이 있다고 미루지 않고(勿謂今日不事而有來日) 당일 처리하는 것이 선생님들의 습관이었다. 갑작스런 장학지도지만 별도로 더 준비할 것도 없어 제출해야 할 각종 서류만 준비를 해 두고, 나는 교육계획 브리핑 차트를 한번 점검하고는 바로 퇴근했다. 이튿날은 가을비가 꽤 많이 오는데 10시경에 김용대 학사계장(후에 대구직할시 교육감)이 반장이 되어 모두 6명의 장학사가 왔다.

차 한 잔을 든 후 안내도 없이 배부해드린 시간표만 가지고 바로 수업장학을 했다. 몇 시간이 지나자 어느 장학사가 나에게 일러주기를 반장님이 "아, 수업 참 잘한다. 소문 그대로구나. 장학사들 오늘 여기서 많이 배우시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수업 참관 후 학습지도안 등 각종 장부를 보시더니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면서 "자, 김 교감!, 이것만은 딱 맞지 않겠지?" 하면서 학생 출결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즉 출석부, 학급일지, 교무일지의 출결 상황 기록이 서로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장학사 6명이 장부를 나누어 들고 한 분이 부르면 다른 분들은 각기 다른 장부를 들고 체크를 해 나갔다. 무결석반이 많으니 확인하기도 쉽지만 확인해 보니 하나도 틀린 곳이 없었다. 반장이 "허허, 이런 학교가 다 있나"하면서 교육계획 브리핑을 듣자고 한다.

그때 마침 허창규 학무국장께서 직접 오셨다. 브리핑을 하는 도중 허 국장님이 "김 교감, 창조력 개발 교육의 차트는 별도로 준비되어 있겠지요?"하신다. 나는"저의 학교는 별도 작성하지 않고 창조력 개발 교육이 해당 영역에 모두 스며들어 있습니다."라고 하니 허 국장님께서 브리핑 하는 내 자리로 오시더니 "김 교감 악수 한 번 합시다. 지금까지 모든 학교가 창조력을 강조하니 그 개념도 파악하지 못하고 차트를 별도로 만들고 있는데, 오늘 영신에서 처음 바르게 파악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시며 무척 기뻐했다. 이 창조력 개발교육은 경북대 사범대 김학수 교수님과 허창규 국장님이 공동 연구를 해서 경북교육의 핵심적 추진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오후 8시가 되니 반장님이 "영신고등학교는 교원 조직이 우수하고, 평소 수업이 다른 학교 연구수업 같다고 하며, 교무행정 또한 다른 학교보다 한 단계 앞서 있다는 소문이 있어 불시에 집단 장학지도를 하게 됐다."고 하신다. 그 후 사람들은 김 교감을 장학사로 잡아가기 위해 집단 장학지도를 했다고 쑥덕였다.

우리 학교는 정부의 새마을 운동보다 앞서 '새 학교 만들기' 운동을 전개했다. 그 내용은 학력 향상을 위한 수업 개혁이었다. 한 가지만 소개하면 학교는 학생 수준에 맞게 한 시간 50분 수업 과정을 선수학습 확인 5분, 본시 수업 목표 5분, 본시 수업 35분, 본시 수업 정리 및 이해도 확인 5분으로 할당하였다. 당시 선생님들의 교재 연구 자세는 참으로 진지했다. 선생님들은 책보에 6, 7권 정도의 책을 싸 가지고 다니며 휴게실 외의 장소에서는 교재연구에 방해된다고 일체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내가 교감을 9년간 계속했고 선생님들은 평생 이 학교에 몸담아와 교육에 일관성이 있고 노하우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 함께 고생했던 선생님들은 지금도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그때 우리는 참 열심히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김연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