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장요?." "고향에 가냐고요?."
지난 27일 낮 대구시청 앞 광장 대구 시내버스 정비노조 천막 농성장. 삭발 후 듬성듬성 자란 짧은 머리, 한여름 장외집회로 붉게 탄 얼굴.
투쟁가를 외치고 또 외치다 쩍쩍 갈라진 쉰 목소리. 농성장의 조합원들에게 추석은 딴나라 얘기.
73일째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 80여 명에게 '무노동 무임금'의 칼은 추석이 다가오면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두들 명절선물을 한아름 받아들고 고향갈 준비에 들떠 있지만 이 곳 조합원들은 부모님께 드릴 작은 선물조차 마련하기 힘든 처지.
"석달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두 달은 어떻게 견뎠지만 석달째부턴 도리가 없습니다. 조합원들 대다수가 은행 빚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종만(41) 노조위원장은 "부모님과 친척들 얼굴 볼 면목이 없다."고 한숨지었다.
결국 조합원들은 고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2평 남짓한 천막에서 단체 추석 차례상을 지내기로 했다. "가족들에게 제일 미안합니다. 맞벌이 하는 아내들이 혼자 집안생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조합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추석에 함께 하지 못해도 조합원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얼마전 조합원들이 가족들을 모두 모아 '왜 파업을 벌일 수 밖에 없는가'를 설명한 자리. 조합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전해들은 가족들은 "힘내라."며 온통 울음을 터뜨렸다.
"기름쟁이로 30년, 40년을 산 조합원들이 수두룩 하지만 아직도 24시간 맞교대와 박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버스 운전기사들은 매년 월급이 오르는데 정비사들 임금은 10년째 요지부동입니다."
조합원들은 "천막 농성장에서 추석 보름달을 보게 생겼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 "굶다 모자라 칡뿌리를 캐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8일 대구탁주노조 파업이 타결되면서 추석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대구지역 총파업 노조는 대구시내버스 정비노조가 유일하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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