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식별하기 힘든 물성 호기심 자극…28일까지 이지현 초대전

한기숙갤러리(053-422-5560) 개관 5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10월 28일까지 열리는 '이지현 초대전' 작품은 분명 형상이 있다. 책이나 신문, 잡지, 혹은 옷의 모양을 띠고 있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더 다가서면 '과연 내가 본 것이 실제 형상인가 허상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가까이 갈수록 더욱 흐릿해지는 이치에 어긋난 듯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현(41) 씨가 '뜯는다'는 행위를 통해 완성한 작품들이다. 한지를 불린 뒤 뜯어내고 붙이는 작업을 한바 있는 이 씨는 최근 책을 마구 찢어낸 뒤 일일이 실로 꿰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의 결과 재조직된 책 조각은 컴퓨터 모니터를 가까이 들여다본 듯 이미지가 흐려졌다. 종이 자체의 물성만 느껴질 뿐 글자는 식별하기 힘들다.

잡지 속 사진도 신문 글자도 검은 색의 점(혹은 화소-픽셀)으로 인식될 뿐이다. 이는 우리 시대에 비판 없이 수용된 다양한 문화의 혼재로 모호해진 자아의 정체성과 시대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도서관에 꽂힌 수많은 장서가 오히려 무엇을 읽어야 할지 고민을 안겨주는 것처럼 전시실 가득한 각종 지식의 창고는 관람객들에게 혼란을 던져준다.

관람객들은 궁금증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내용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 이 씨의 말이다. 우리가 사물의 본질이라고 믿는 것이 그저 눈속임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등학교 교과서로 시작된 이 씨의 작업은 고전, 특히 '창작과 비평' 등의 사회서적으로,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잡지로도, 호화 백화점의 쇼핑백으로까지 이어졌다. 재료가 바뀌면서 지질이 단단해져 공정이 더욱 까다로워지기도 했다. 항상 새로운 재료를 찾고 있는 이 씨의 작업방향을 엿볼 수 있는 옷가지 형태 작업을 비롯한 7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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