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은 온통 회색빛이다. 발원지인 포항시 죽장면에서 하류쪽으로 따라 내려오다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최상류는 자연하천 형태를 일부 유지하고 있지만 영천부터 하류인 달성군 화원읍까지는 콘크리트 제방으로 뒤덮여 있다. 전체 길이 118km 중 70km 정도가 콘크리트다. 이런 환경에서는 동·식물의 생장이나 자연계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물고기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기형적인 식생(植生)형태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질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강의 생태적 기능은 거의 사라졌다. 금호강이 살아 숨 쉬는 하천이 아니라 단순한 '물길' 역할만 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최상류는 청정지역
포항시 죽장면 매현리. 금호강 발원지인 가사천이 흐르는 최상류 지역이다. 얼핏 마을앞 개울 같은 느낌이다. 10m도 채 안 되는 강폭이어서 돌을 밟고 건너도 충분하다. 강가에 서있으면 맑은 물에서 향내가 난다.
자그마한 개천에 불과하지만 생태적으로는 최적의 환경이다. 달뿌리풀이 강가에 늘어져 있고 자갈밭에 자그마한 키의 갯버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울과 소(沼)가 있고 그 아래로 갈겨니 피라미같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취재진과 동행한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달뿌리풀·갯버들 군락은 홍수때 상류로부터 떠내려오는 모래와 자갈은 물론 쓰레기까지 붙잡아 주는 완충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하천의 전형이다.
◆영천댐 인근부터 생태계는 부서지고
최상류 가사천과 자오천이 합류하는 지점을 따라 10㎞쯤 내려가면 영천댐이 나타난다. 영천댐 주변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별다른 오염물질이 없다. 그러나 자양면 충효리에는 둔탁한 느낌의 보가 물길을 가로막고 있고 콘크리트 제방이 높다랗게 쌓여있다. 자연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갯버들이나 버드나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인공적이다.
영천댐 아래 임고면 삼매리는 마구잡이 준설로 하천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뀐 지역이다. 최근 영천시가 강바닥을 마구 파헤치는 바람에 물고기가 거의 사라지고 수변식물도 없어졌다.
지류인 고현천이 흐르는 영천시 화산면 매산리에는 지난해 매산숲 시민휴식공원 조성공사로 인해 수백 년 이상 된 왕버들 팽나무 참느릅나무 숲이 상당수 사라졌다. 대신 박달나무 이팝나무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말라죽는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조경에 좋다는 이유로 토질이나 기후에 맞지않는 나무를 심어놓은 것이다. 학술조사팀원들은 '탁상머리 행정의 전형'이라며 혀를 찼다.
임고면에서 영천시내 초입까지는 20여 년 전 만들어진 흙제방이 많이 남아있다. 수질이 좋고 주변환경이 청정한 곳이다. 제방에는 버드나무, 팽나무, 참느릅나무가 서있고 강가에는 달뿌리풀, 물억새, 갈풀 등이 만발해 푸근한 느낌을 준다.
◆꼬리를 잇는 콘크리트 강둑
영천시내에 들어오면 강변에는 널따란 둔치가 눈길을 끈다. 강은 자신의 몸집을 최대한 줄여 웅크리고 있고 잔디밭과 자전거도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강가에는 물억새와 달뿌리풀이 우점종(優占種)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강(江)다운 느낌은 전혀 없다. 10년 전 모래와 자갈이 있던 곳을 콘크리트로 도배하는 바람에 동식물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 됐다.
한국의 자연하천이라면 강물→모래사장·자갈밭→1년생 풀(고마리, 여뀌 등)→다년생 풀(물억새, 달뿌리풀, 부들, 줄 등)→버드나무→산지나무의 식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부터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류까지는 강물→다년생 풀→콘크리트 제방이 전부다. 인공미가 자연계 순환을 막고 있음을 알게 된다.
류승원 영남자연생태보존회 회장은 "식생이 황폐해짐에 따라 물풀을 뜯어먹을 물고기와 철새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면서 "특히 모래·자갈밭에 자리를 잡는 물떼새, 도요새는 더이상 찾아오지 않고 오리류나 왜가리만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학술조사팀은 둔치 전체를 공원화하기보다는 일부 구역을 지정해 자연하천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간만 편하려 하지말고 강에게도 최소한의 생존 기회를 주자는 논리다.
여기서부터 경산, 대구를 거쳐 하류로 따라 내려가는 길이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학술조사팀=영남자연생태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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